결혼하기 전에 몸무게가 늘 56이었다. 밥을 먹으나 안먹으나 이러나 저러나 특별한 사건(이별)이 없는 한 고정급여같은 언제나 그 몸무게. 키는 밝힐 수 없다. 오해금지. 내가 설마 170이 넘는데 56이라고 징징대는 것이 아니다!
늘 그렇게 살다가 지금 남편이 된 남자친구를 만나고 결혼이야기가 오가면서 살을 뺐다. 그러니까 연애하는 동안 나는 계속 야위어가는 중이었다. 특별한 비법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연애와 상관없이 오전7시에 엄마랑 수영장에 다녔다. 그 수영은 결혼식 하루 전까지 계속 되었다. 공복 운동이 건강에 좋았던 것 같다. 수영을 하는 동안 살이 빠진건 아니었다. 수영실력이 늘었다. 내가 1년 안에 접영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인지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살이 빠져도 빠지는 것 같다.
장염에 걸려서 설사를 죽자고 하느라 3킬로가 빠졌다. 6월즈음. 결혼식은 9월이었으니 6월에 53이 된 것이 상당한 촉진제가 되었다. 그 이후로 저녁을 더욱 안 먹었다. 안 먹거나 덜 먹거나. 결혼식 하루 전에는 잠시 이성을 놓고 삼겹살을 먹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저녁을 안 먹다보니 결혼식때는 51이 되었다.
내가 결혼식 할 때는 수저를 잃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웨딩촬영 등의 스드메, 한복, 반지나 시계 등의 예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그래놓고 프라다가방 두개...ㅋ). 한복을 안하긴 했지만 한복입은 사진을 찍고 싶긴 해서 친한친구의 한복을 빌리기로 했는데 그 친구는 40킬로대의 친구였다. 그러니 나는 더더욱 살을 빼야했다.
51로 나는 결혼식장에 들어갔고, 나는 날씬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신혼여행다녀와서 긴장이 풀리면서 살이 슬슬 쪄갔고, 8개월 후 임신 사실을 알고 8주쯤 병원에 갔을 때 쟀던 체중이 55.7이었다. 이러고 69까지 쪘다. 같이 일하던 동료분이 새로 오신 직원에게 날 소개하면서
"이 선생님 원래 마르고 예뻤던 분이야, 근데 임신하고 이렇게 됐어."
헉스러웠지만 나는 원래 말랐던 게 아니라 점점 살을 빼고 있었던거다. 말하자면 말라갔던거지 '말랐다'는 완료형으로 살았던 적은 없다.
첫째낳고 69에서 60까지 빠졌을 때 둘째가 강림했다. 둘째 만삭때는 66이었다. 아무래도 첫째가 있기도 하고 살빼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다보니 맘 놓고 먹고 살지 않았고, 임신성당뇨이기까지 해서 더 긴장상태였지만 66.
둘째 낳고 조리원에서 또 60까지 밖에 못 빼고 나왔다. 18개월동안 열심히 두마리를 키우다가 둘째까지 어린이집을 보내고 기념으로 엄마랑 아쿠아필드 찜질방에 갔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자체가 고생스런 일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신경쓰여서 많이 먹고 살지도 않았다.
얼마나 빠져있을까 기대됐다. 이 좋은 곳에서, 내가 가져간 기초화장품이나 바디제품들보다 더 좋은 것들이 비치되어있던 그 아쿠아필드! 상쾌하게 샤워까지 마치고 목말랐지만 물도 안마시고 손목에 걸려있던 락커키까지 빼고 체중계에 올라갔다.
60
헐
60.0
헐
나는 18개월동안 뭘 한거지?
내가 지내온 세월은 단 500그람의 가치도 없었던 세월인가.
애가 거부할때까지 모유수유를 하고, 이유식은 꼭 내 핸드메이드로 만들어주고, 다소 우울했던 첫째 육아때와는 달리 나름의 경력직으로 리드미컬하게 육아를 해왔는데, 그리고 아이낳고 정확히 59일째에 복직했다. 일도 했다고. 근데 몸무게는 그대로? 나는 맘 놓고 먹지도 않았다. 늘 배고팠다. 스틸 아임 헝그리. 난 늘 그랬다. 그랬다고. 근데 60......
너 처럼 먹은 적이 없는데 엄만 왜 이러니
우울했지만 이 상태로 살 수는 없다. 계속 입었던 임부복이나 루즈핏의 옷들은 일단 버렸다. 회피처가 있으니 더 도전적으로 살을 빼지 못하는 것 같았다. SNS에서 많이 회자되던 곤약깔라만시를 저녁대신 먹고 저녁뿐 아니라 전반적인 식사량은 정말 파격적으로 줄였다. 그리고 동네에 생긴 플라잉요가원에 다니면서 나름 운동도 했다.
플라잉요가는 정말 추천할만 하다. 아직은 안아줘야 하는 아이들, 몸을 더 굽게 만드는 집안일들 때문에 마사지를 받고 싶은 나날이 이어지던 중에 무료체험 수업에 갔는데 정말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시원했다. 해먹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허벅지에 해먹을 두번 감아 올라갈 때는 진짜 피가 거꾸로 솟고 살이 터지는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아플수록 시원한 변태같은 쾌감이 너무 좋았다. 그래도 6개월간 체중의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운동은 계속 했다. 거꾸로 도는 일이 많다보니 혈액순환이 되는 느낌이 확실히 좋았고, 어느 순간 어깨선이 생겼으며 나는 쇄골이 있는 사람이었고 다리펴고 앉았을 때 똑바로 펴지지 않던 허리도 많이 펴져서 정말 시원하고 유연해진 느낌을 거울로 눈으로 피부로 근육으로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이 빠지는 것 같지 않아 걱정했는데 어느 날 목욕탕에 간 김에 용기를 내어 체중계에 올라갔다.
와우, 57이었다!
식사량을 파격적으로 줄인 지 1년 2-3개월만의 일.
15개월만에 3킬로라니ㅠㅠ
더욱 더 덜 먹으려고 노력했다. 흔히들 굶어서 살 빼는게 아니라지만 굶는 게 습관이 되면 된다. 나는 군것질을 안한다. 하루에 한 잔 마시는 카페라떼가 유일한 군것질이라면 군것질이다. 초코렛, 과자, 빵을 안 먹는다. 이러니 나는 식사량을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동생이 결혼한다고 했다. 결혼날짜를 잡은 5월부터 결혼하겠다는 9월초까지 나는 또 더욱 공격적인 다이어트에 들어간다. 나 결혼식때 입었던 친구의 한복을 한 번 더 빌리기로 했기 때문에.
이제 진짜 시작이다!
1년간 3킬로였지만, 나는 3개월간 6킬로는 빼야하는데.
빠지던 중이라서 그랬는지 3개월간 3킬로가 더 빠져서 54에 동생결혼식에 갈 수 있었다.
친구들이 참 좋은 다이어트방법이라고 했다. 친구한복입기위한다이어트!
살을 빼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지나가니 또 긴장이 풀렸다. 긴장 풀면 살찌는 타입이라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저녁을 안먹거나 덜 먹고 살아온 시간이 1년 반이 넘다보니 저녁을 먹는게 더 부대끼는 일이었다. 식탐이 많던 시기엔
'내가 이런 것도 못 먹고 살아야 하나.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날씬하게 살아서 뭘 하겠다고. 결혼도 했고 애도 있는 아줌마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몸은 거짓말을 안한다는 것을 1년 반 동안 체험했고, 먹고 싶어서 먹었다가 새벽까지 못자고 가스만 차던 경험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식탐도 줄어갔다. 그리고 40이 되면 기초대사량이 반으로 준다고 했다. 기존과 같은 양을 먹으면 오히려 찌는거다. 먹는 양을 파격적으로 줄이거나 운동량을 파격에 파격을 더해 늘려야 겨우 유지정도되는거다.
노력은 하고 살지만 입고 싶었던 옷이 잘 맞거나 원했던 쉐이프가 나오진 않았다. 사진으로 보면 60일 때나 54일 때나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코로나가 왔고, 운동은 자연스레 중단하게 되었고, 운동량도 줄어든 것이 뻔해보였고, 그러다보니 나는 점점 살이 찌고 있을거야, 생각하면서 체중계에 올라가지도 않고 살았다.
나는 피임 및 생리중단을 위한 미레나 시술을 했다. 부작용으로 살이 찔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체중을 직면하는 것이 좀 두려웠고, 예상하는 몸무게가 나왔을 때의 그 굴욕감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걱정되었다. 나는 좀 우울질이 있기 때문에.
2주쯤 전에 어떻게 체중을 외면하고 살겠나, 직면을 해서 운동량을 늘리든 먹는 양을 줄이든 대책을 세워야겠다 싶어서 큰 맘 먹고 우울을 직면하겠다는 용기로 체중계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