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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Dec 06. 2020

겨울, 옛날 집 회상

추웠지만 따뜻했던 주택살이

 내가 태어나서 14살까지 살던 집은 마당이 있고 지하실이 있는 서울 변두리의 한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엔 봄이 되면 진달래가 피었고, 가을이면 빨갛게 물드는 단풍나무도 있던 우리 집. 마당이 있는 덕에 강아지, 라기 보다는 우리 집을 지켜주던 똥개(믹스견)도 함께 살았던 정감있는 집이었다.


 주택의 맹점은 아무래도 난방이라 겨울마다 겪었던 혹독한 추위는 그 집을 떠난 지 30년 가까이 된 지금도 기억난다. 겨울이 오는 매년 11월 말 즈음이면 우리 집을 그나마 따뜻하게 데워줄 연탄이 배달되었다. 연탄을 실은 큰 트럭 한 대가 우리 집 앞에 서면 아저씨 몇 분이 지게에 연탄을 지고 지하실로 옮겨주시느라 하루종일 고생하셨는데, 나서기 좋아하는 동생이 아저씨들 도와드린다고 연탄을 들고 옮기다가 떨어뜨려서 할아버지께 엄청 혼나기도 했다. 한 장에 얼만 줄 아냐며. 내 기억에 200원쯤 했던 것 같다. 빵빠레아이스크림이 300원하던 시절이니 어렸던 나도 비싸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빠는 철물점에서 연통을 차에 가득 실어 오셔서 거실에 연탄난로를 설치하셨다. 그 시절 겨울은 항상 추웠지만 가끔 더 추웠던 날이면 엄마는 연통을 안은 채로 서서 텔레비전을 보시기도 했다. 그런 엄마를 흉내내려고 연통을 만졌다가 너무 뜨거워서 큰일날 뻔 한 적도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아빠가 용인으로 직장을 다니셔야 해서 우리 가족은 당시 화제의 신도시였던 분당으로 이사했다. 우리가 이사한 집은 난생처음 보는 아파트라는 빌딩이었는데, 너무 신기했다. 빌딩같은 곳에 아빠의 사무실이 아니라 우리의 살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마당도 지하실도 없는 집에 가보니 아무리 집을 뜯어봐도 겨울에 뗄 연탄난로를 위해 연탄을 보관할 곳도, 연통을 바깥으로 연결할 구멍을 뚫을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서 너무 낯설고도 신기했다.


 이 집은 난로를 뗄 필요가 없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난로를 안 떼도 따뜻하다고? 정말 연탄난로 없이, 새벽에 난로불이 꺼지면 안 되니 아빠, 삼촌, 할아버지가 당번을 돌아가며 새벽연탄을 갈지 않아도 되었던 그 해 겨울의 따뜻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파트생활이 삭막하긴 하지만 편하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아파트에서 산다. 하지만 “집”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옛날에 살던 그 단독주택이 떠오른다. 지금도 어쩌다 꿈을 꾸면 꿈에 나오는 집은 내가 다 큰 모습이어도 늘 그 옛날 집이다. 그만큼 내 정서와 무의식을 가득 채웠던, 지금도 채워주고 있는 집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초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꽃과 나무, 동물과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나의 유년시절에 비해 아파트단지안의 꽃과 나무를 그저 구경하고 늘 각진 곳으로만 다니는 아이들에게 “집”은 어떻게 그려질까 싶어서.



 옛날 집은 추웠지만 따뜻했고, 지금 집은 편하고도 따뜻하니 외형의 딱딱함보다는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는 집안의 따뜻한 분위기와 정서적인 안정감을 누리기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옛날 집에 대해서 추웠던 사실만이 아니라 따뜻했던 추억의 풍요로움을 더 크게 기억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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