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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Dec 13. 2020

마음의 문제2

마음이 날 속였나 사실이 날 속였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가 예상하는 체중이 맞더라도 나는 그렇게 우울의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로 결정하고, 남편이 플라잉요가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했으므로(플라잉요가는 비용이 꽤 된다. 3~6개월치를 한번에 계산하는 조건이어도 한달에 10만원이상이다. 필라테스보단 저렴한거라고 하기도 하더라고요), 나는 더 굶을 수 있고 운동을 더 할 수 있으니까! 생각하며 고장났을지 모르는 체중계를 옷장 깊숙한 곳에서 꺼냈다.


 고장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아이들부터 올라가보라고 했다. 8살인 첫째는 21, 6살인 둘째는 18이었다. 이 정도면 이 나이대에 어울리는 몸무게, 내가 예상했던 몸무게. 터무니없이 막 30이 넘는다던지 15도 안된다던지 하지 않았기에 체중계는 고장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제 나만 올라가면 된다. 엄만 몇 킬로냐고 물어대는 아이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유튜브를 틀어줬다. 아이들에게 내 알몸은 보여줄지언정 체중공개는 노노!


 이윽고 올라간 체중계,

 그 체중계가 표시하는 숫자는!!


관리하는 인생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만찬! 킹크랩! 정말 대박이었어욥!!^^


킹크랩을 한 번 먹어보세요!

저희 정말 큰 맘 먹고 큰 돈내서 먹었는데!

따봉!





 54.7


응?


54.7


 왜 보고도 안믿어?

 수평이 안맞나 싶어 여기서 재고 저기서 재도 수평은 어디서나 확실했고 나는 54.7이었다.


57.4가 아니고?


나는 57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때도 꽉꼈던 옷이 지금도 꽉껴서.


 

내가 54.7이면 싱글때 같았음 그냥 55사이즈로 웬만한 옷들이 부드럽게 입혀지는 수준일텐데 몸의 쉐이프는 희한해졌고, 몸무게는 생각보다 줄어있었다. 그래도 혹시 체중계가 거짓말하는 것일지도 몰라 엄마가 오셨을 때도 체중 한 번 재보시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올라가시더니


이거 고장난거 아니냐며

너무 많이 나간다며.


응?


그럼 내가 얼마나 말랐다는 말이야?


-


 일주일간 내 몸무게를 추적해보았다. 밥을 많이 먹은 다음이라도 55를 넘진 않았으며 아침에 일어나 공복일 때는 더 54에 가까웠다.


 출퇴근 전후나 그냥 옷을 갈아입을 때 거울을 보면서 살은 언제 빼나, 언제까지 이 부피로 사나, 내 인생에 더 이상 '날씬'이란 말은 없는건가, 수의는 44사이즈로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 몸과 내 살덩어리들을 저주, 까진 아니었지만 그다지 축복도 하지 않는 채로, 늘 마음에 안들어 하며 내 몸을 상대해왔다.


 하지만 예상보다 적게 나가는 내 몸무게를 확인해보니 나는 선악과를 먹은 이브처럼, 해골물을 먹은 원효처럼 눈이 트이고 생각이 열린다. 내 몸이 생각보다 날씬해보이고, 이 옷이 아직 맞네? 아직 괜찮네? 싶고, 이 정도 몸무게면 소세지 하나 더 먹어도 되지! 하면서 식탐과 의지를 꺾어가며 아이들에게 조금씩 양보하던 내 밥과 고기반찬들을 끝까지 사수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저녁식사를 하다가는

 "나 이거 까지만 먹을래, 살 빼야되서."

 "나 다이어트해야 돼, 운동 좀 하고."

 이런 말을 말 트인 후 부터 꽤 오랜 세월동안 장난처럼 진짜처럼 누구 흉내내는 것 처럼 해왔다.


 긴장이 풀리기도 했고, 일주일은 축제를 즐겨보자 하는 마음으로 고기를 굽고, 저녁도 먹고 했더니

 "엄마, 왜 다 먹어?"

 "엄마,  만두 하나만 줘 엄마 살 빼야지."

 "엄마, 다이어트 옷 입어. 운동해야지."


 .... 산 교육이 중요한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더욱 알게 되는 중이다.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 보통은 저녁을 먹으면 (너무 배고플 때는 한 1/3공기 정도를 먹었다) 그것도 먹은거라고 더부룩하고 너무 배부른 느낌이고 그래서 소화시킨다고 새벽 1-2시까지 깨있고 그랬었는데, 지난 일주일은 밥을 반공기씩 채워서 먹어도 더부룩하지도 않고 소화도 너무 잘되고 12시도 되기전에 다시 허기지고 막 그래서 야식이 자유롭던 임신안정기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야식을 먹진 않지만, 이전보다 조금 많은 양의 저녁식사를 해도 아침 체중이 비슷해서 뭔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일주일의 축제는 끝났다.

이제 나는 다시 덜 먹거나 안 먹을 것이고 조심할 것이다.


 



 동생의 결혼식 이후로 체중계에 안 올라갔기 때문에 체중을 안재고 산 지 2년이 넘었다. 2년 동안 나는 늘 마음 졸이며 덜 먹거나 안 먹으면서 이렇게 노력해도 찐다고 내 몸을 오해하고 몸을 보며 한숨쉬고 그래왔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이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생각이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사실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내 마음이 편할 것이고, 이번 일 처럼.

사실이 믿기 싫은 것이라면 내 마음은 괴로웠을 것이다.


사실을 마주하지  않은 채 살았다면 나는 계속 다이어트를 하고 있겠지, 만족이 없는 채로.


예상하던 수준의 몸무게였다면 나는 믿고 싶은 사실을 만들기 위해 나는 더욱 더 다이어트실천에 힘쓰느라 에너지를 쓸 것이다. 그러다 혹시나 한계를 느꼈다면 '이 정도의 몸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잡는 일에 에너지를 쓸런지도 모른다.


 믿고 싶은 사실, 믿을 만한 사실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에너지를 얻게 해주지만 믿기 싫은 사실은 마음을 들쑤시고 에너지를 축낸다. 다른데서 에너지를 꾸어와도 금방 소진된다. 그러다가 마음에 병이 나고 몸도 상하게 될 지도 모른다.

 믿고 싶은 사실, 믿을 만한 사실이라는 것은 또 뭘까. 믿고 싶고 믿을만 하다고 결정하는 것은 나의 '생각'일까. 여기서 나의 사실은 내 몸무게가 54.7이라는,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측정가능한 '사실'이었고 이 정도면 받아들일만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가벼웠다.

 

 사실과 생각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나를 수렁으로 끌어 내리기도 하고, 구름위에 띄우기도 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라면 받아들일 만한 사실을 만드는 것이 나을까, 그냥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는게 나을까, 처음부터 '받아들일 만한 사실'이라는 생각을 다른 차원으로 두는 것이 나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몸무게를 확인한 이후로 이전과 전혀 달랐던 나의 식생활과 내 몸에 대한 생각을 하며 잠시 생각이 깊었다. 사실 난 쓸데없이 비장해지는 성격이다.


 외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인간에겐, 아니 그냥 나에겐 내면을 헤아릴 혜안이 없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내면이 내가 맞다면 사실 난 내면보다는 외모가 훨 낫다고 생각한다. 궁서체다.

 성경에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써 있다. 구약 사무엘상에. 하나님이 못생긴이들에게 힘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내면을 조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생각들이 그렇게 무겁거나 어둡지 않아서, 내 주변을 싸고 있는 사실들 역시 받아들이기에 복잡하지 않은 것들이었으면, 그래서 내 마음에 유쾌함이 우울함보다 조금이라도 앞섰으면 좋겠다 싶다. 생각의 기준이 높아야 할 때가 있다. 도덕이나 양심에 관련된 부분에서 그렇다. 그러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는 나름의 유연함을 갖고 싶다. 물론 몸에 대해서는 기준을 낮출 생각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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