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에 간 푸른이 외할머니1
이 일은 현재진행형의 실화임.
"무릎이 좀 아파서요."
"사진 한번 찍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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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은 사실 퇴행성이에요. 나이드시면 계속 조심하셔야 되는거지. 그래도 아프시면 허리도 한번 찍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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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허리가 난리가 났네! 안아팠어요?"
"글쎄요, 이 나이 되면 다 이 정도 아픈거 아닌가 했는데요."
"허이구(어이구 아님), 어떻게 참고 사셨데?"
"그렇게 심한가요?"
"여기(엑스레이) 보세요. 삐뚤빼뚤 난리났지. 이거 심해지면 협착증와요."
"그럼 어떡해요?"
"물리치료 받고가실래요?"
"아니 뭐 그럴 거 까지는...."
"험한일 하셔요?"
"험한 일이라면 뭐.....?"
"평생 식당을 하셨다던지, 무거운걸 들고 다니시는 일을 하신다던지.."
"아 저 손주 키우고 있는데."
"허이구! 그게 제일 험한 일이지 그게. 중노동이요 중노동. 어쩌실라고. 그 일을 그만하셔야 하는데."
"손주 하나 더 생겨서 한 4-5년은 더 키워야 하는데.."
"허이구! 우리 어머니같은 말씀하시네. 애들 키운다고 아픈줄도 모르고 사시는 분들이 있긴 하더라고요. 큰일났는데 이거."
"제가 쉬엄쉬엄이어도 수영은 오래 했거든요. 요즘 운동을 못해서 더 심해진걸까요?"
"아 뭐. 수영은 좋은 운동이죠. 근데 안했다고 이렇게 된 건 아니고. 운동은 계속 하시는 게 좋아요. 근데 시절이 이래서.. 일단 약 처방해드릴께. 약 드시고. 그리고 중요한거. 살찌시믄 안돼."
"하하하. 네에.."
며칠 뒤
"엄마, 이거. 김서방이 엄마 물리치료든 도수치료든 받으시라고."
"뭔 소리니 얘는? 내가 뭐 이런 거 달라고 아프다고 한 게 아니야."
"일단 이 돈으로 하고, 보험사에 청구해서 환급받으면 그거 우리가 가지면 돼."(보험금은 우리가 내고 있다)
"됐어, 그럴 정도 까지 아니야."
"의사가 큰일났다고 했다며."
"얘, 너 까지 이러면 내가 누구랑 수다떠니? 그냥 아파서 병원다녀왔다고 말 한거야. 내가 너 집 보고 왔다고 집 사주냐? 그냥 말 하는거지, 그냥. 병원갔다온 거 니 아빠한테 말하면 당장 그만해라, 이래라저래라 생각만 해도 구찮어. 그냥 너한테 말한거야, 그냥. 너까지 이러면 나 이제 아무말도 안하고 살아야 돼. 아직 뭐 치료까진 아닌 것 같애. 난 그래. 약 먹으니까 좀 나아졌어, 괜찮아."
"의사가 물리치료 받으라고 했다며. 어쨌든 우리 애들 보느라 그런 거 잖아. 올케 애기 오기 전에 치료를 좀 받아놔. 푸른이 8살이야. 신생아는 강도가 달라. 올케가 나 처럼 파트타임도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정규직이잖아. 엄마 이제 독박이야 독박."
"아이고, 일단 됐다니까! 괜찮다고!"
"그럼 엄마 이거 갖고 소고기라도 사드셔. 안 받으면 나 김서방한테 혼나."
"그럼 너 가져. 내가 비밀로 할께."
"나 가방 산다?"
"살려면 사. 니 맘대로 해. 얘는 왜 괜한 얘길 김서방한테 하고 있어? 이제 수다떠는데도 딸 눈치 봐야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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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대화는 겁나 투명하게 하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연년생으로 조카가 또 생기는 중이라 생명은 고귀하지만 고귀한 만큼이나 뼈와 살과 피까지 뽑아먹는다.
엄마의 무릎은 한동안 괜찮았다. 한동안.
고귀한 생명이 뼈와 살과 피를 뽑아먹고 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