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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an 11. 2021

이런 연말연시가 있었단다

2021년이 되던 2020년에 말이야.

이렇게 이야기 할 날이 올까.


 "푸른아, 너 8살때 기억 나? 8살에 초등학생이 되고, 보통 입학식을 하거든? 그럼 막 운동장에 막 모여가지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고모삼촌 다 모여가지고 막 꽃다발들고 사진찍고 다같이 밥 먹으러 가고 난리나는 날이거든? 근데 너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코로나라는 역병에 돌아서 입학식도 못하고 4월 되어서야 학교 갔잖아, 것두 일주일에 한 번, 맨날 마스크쓰고. 그러다가 4일씩 가는 날도 있었지만 결국 늦가을 즈음엔 아예 안가고 막 아이패드로 애들하고 선생님 만나고 막 그랬잖아. 일요일마다 교회도 못가고 성탄예배도 송구영신예배도 못 가고, 할머니네 가서 떡국도 못 먹고 그랬잖아. 그래도 그 역병을 뚫고 산타 할아버지는 오셨었지.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대박이었지. 기억 나?"


 하며 기이했던 2020년을 이야기 할 날이 올까. 아니면 지금 이런 생활이 그냥 현실이 되어 N년 뒤 까지도 수업은 물론 입학식과 종업식, 졸업식은 모두 컴퓨터 앞에서 하고 마스크쓰고 사는 것이 일반이 되는 날을 살게 될까. 더 이상 우리에게 여행과 축제와 잔치는 과거였던, 혹은 기적이 아니라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는걸까. 오늘 내 친구의 아들은 줌으로 초등학교 졸업식을 했단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이미 현실이다.



 기이한 와중에 더 기이하게도 부동산과 주식은 폭등하여 분위기를 타든 물을 타든, 타고 올라선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져 안부와 위로보다 질투와 혐오가 일반인 세상이 올까. 정말 현금가치는 점차 하락하여 부동산과 주식만이 우리의 생존을 지키는 답이 될까.

 늘 상승할 수는 없으니 폭락장에 대비해서 '준비'를 하라는데, 그 준비는 뭘까. 결국 '현금'아닌가?(뭘 준비해야하죠, 손주부작가님?ㅋ)어제도 주린이, 오늘도 주린이코스피 3200돌파의 날에도 굶주리고 있네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손목은 원래 좀 약한 편이었는데 아이 둘 낳고 안고 엎고 수유하고 하면서 손목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낳고 8년 중 5년은 파스와 함께 살았던 것 같다. 이제 아이들도 안아줄 나이는 지나서 손목도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코로나로 출근길이 막히면서 집에 있는 동안 거의 휴대폰 중독자가 되어 늘 폰을 들고 지냈고, 최근에는 주식에도 입성한다고 막 초단위로 휴대폰을 들었다놨다, 내 심장도 들렸다놨다 하면서 손목도 아픈 것이 정말 작정하고 휴대폰 그만 봐야지, 해도 아이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오는 연락, 직장에서 오는 연락, 살기 위한 업무들의 대부분이 휴대폰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휴대폰에서 손을 뗄 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떼놓지 않는 나도 문제다.


 게다가 남편도 가끔은 재택근무를 하는데, 보통 엄마가 와계시면 집이 정리가 되고 사람사는 집처럼 보이는데 엄마와 같이 성인으로 분류되는 남편이 집에 있으면 왜 집은 사람사는 집에서 더 멀어지는거지? 허리며 무릎이며 펴고 있을 여유가 더 없어지고 손목은 더 아프다. 먹는 입은 늘고, 돕는 손은 없다.


  

 코로나가 슬슬 지나가면 이것도 독감처럼 분류되어 백신을 맞으면 안 걸릴 확률이 높고, 걸려도 3-4일 조심하면 없어지는 걸로,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올 거라고 믿을까. 믿어야 하지 않을까.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하던 날도 있었지만 결국 인간의 지혜가 인간을 여기까지 살게 한 것 아닌가. 김프로님이 그랬다. 비관론자는 명성을 얻을 수 있지만 낙관론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낙관해도 되는 것일까. 그럼 나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살림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텐데 자산이라도 승산이 있었던 것은 위로일까 염장일까.

 

 2020년이 시작되면서 2020이라는 숫자의 배열이 주는 즐거움과 신비함을 채 풀어놓기도 전에 그냥 생략된 기분이다. 생략된 채로 2021년을 맞았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간은 흘렀고, 한 살씩 먹었다. 공평한 흐름속에 누구는 자산증식, 누구는 그대로, 누구는 일보~N보 후퇴 등,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다르게 나타났다. 공평한 세상과 공평한 기회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저주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인간의 지혜에 감탄과 감사를 느끼며.


밤 10시에 뛰쳐나갔어요. 12시가 다 될 때까지 놀았습니다. 썰매도 탔고요^^ 맨 위의 대표사진도 저희 동네 사진입니다. 몽환적으로 넘 멋지게 나왔어요.


어른들에겐 심난함이었지만 아이들에겐 축제였던 한 밤 중 함박눈 사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른들의 곡소리를 이미 치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살아계세요. 살아있어요. 살 수 있다면 살아 있기로 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겪은, 겪고 있는 이 일들을 추억처럼 무용담처럼 말할 수 있기를

이런 연말연시가 있었다고, 이런 날들이 있었다고, 그렇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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