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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an 12. 2021

즐거운 우리 집 이라고?

나는 아니지만 우리가 즐겁다면 나도 즐거운 걸로.

 보통 새해를 맞이하면, 나는 그렇다.

 각 잡고 앉아 다이어리와 하이테크 펜을 들고 고심하고 끄적거리고 또 생각하고 또 뭘 쓰고, 그랬던 것이다.


 사실 월말을 보내고 월초가 올 때마다 나는 카페 구석에 앉아 다이어리를 펴고 그저 넘기든 내가 적은 일기를 읽든 하면서 쓸 것도 없는데 뭔가를 쓰면서 그렇게 월말을 보내고 월초를 맞았다.


 나이를 먹고 있으니 생각보다 월말과 월초가 빨리 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달 별로 정리할 일이나 목표를 만들 일도 많이 없어졌다. 면접을 봐야 하거나, 나의 성과물을 어디로 제출해야 하거나, 꼭 만나야 하는 중요한 지인이 있거나, 안 가면 죽을 것 같은 전시나 음악회가, 이제는 없다. 없어졌다. 있어도 없다 치고 산다.

 그러다보니 월말월초에 행해지던 의식은 자연스럽게 없어졌고 연말연시의 의식만 내 인생에 가늘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새해는 좀 특별한 것이잖아.

나이를 먹어가는 게, 특히 40대라는 것이.


 20대에도 나의 30대를 상상하는 일은 감히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30대를 통과해서 40대라니. 뭔가, 뭐라도, 좀 생각을 하고 좀 계획을 세우고 좀 뭐라도 고심을 한 흔적이 내 기억속에라도 아니 내 다이어리에라도 좀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좀.


 흡연자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달까. 카페에 갈 수가 없으니 갈 길을 잃은, 짬밥 안 되는 방랑자처럼, 막 답답하고, 담배라도 피우고 싶고, 비흡연자보다 세금은 더 내는데 유해한 사람으로 눈총받는 흡연자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 그래도 건강에 해로우니 담배는 끊으시....라고 하면 커피는 뭐 몸에 좋은가.


 커피를 사다가 집에서 마시면서 다이어리를 쓴다면?

 

 일단 그거슨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학교와 어린이 집이 막힌 아이 두 명이 얽히고 설켜있고, 가끔은 남의 아들까지 합세해서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더럽히는 일을 맡는다. 시절이 이러니 나는 엉덩이 붙이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단 5분만이라도 사람목소리 없는 백색소음만 있는 곳에 있고 싶다. 발행 글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집이란 '노동의 공간', '상처의 공간'이다.


이렇게 놀라운 뷰를 선사해주기도 하지만


 물론 즐거운 우리 집, 내 주변 누구보다도 돈을 제일 잘 벌어다 주시는 집느님이시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앉아있는 식탁에서도 치워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없애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눈에 보인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일을 해야하는,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지는 공간이 나에게는 '집'이다. 이런 '집'이라는 '공간'에서 마음을 다고 생각을 쥐어짜기란 여간해선 힘든 일이다.


 그래도 고심하며 노트북이 아니라 펜을 들고 휴대폰이 아니라 종이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쓰고 싶은데. 내 생일 날짜에라도 동그라미쳐놓고 싶은데. 빨리 2.5단계가 끝나기를, 시간이 빨리 흘러주기를 바라야 하나. 마음을 조금은 겸손하게(?) 먹고 청소가 잘 된 날, 집에서 다이어리를 펴야하나. 지금으로선 그게 현실적이겠다. 2.5단계 끝나면 보복외출이 심해져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고상하게 카페에 커피와 함께 앉아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도 좀 하고, 적으나 안 적으나 중요하지 않거나 까먹기 좋은 일을 적으며 작년에 대한 소회와 그럼에도 올해에 대한 희망을 나만의 글씨로 적어 놓고 싶다.


 한 해가 지나면 펴보지 않을 다이어리이지만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들고다니는 물건이기도 한 게 내 다이어리니까, 잊기 싫고 중요한 것들은 브런치나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장황하게 써놓겠지만 나만의 디테일은 나만의 다이어리에!

 

 카페라는 휴식이 커피와 함께 나에게 오길,

기적처럼 선물처럼 나에게 와주길.


*


그냥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커피라는 선물도 주었고요.


카페는 아니지만 키즈카페, 그래도 카페는 카페죠^^


20대부터 20년가까이 쓰고 있는 육심원 다이어리.

외모도 생각도 그때의 나와 다른 나이지만, 그래도 취향은 초지일관, 수미쌍관, 독야청청!


왼쪽이 올해, 오른쪽이 작년 껀데 작년엔 꿈도 계획도 없이 시작해서 마무리했네요. 사실 꿈은 없고 그냥 놀고 싶습니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산업혁명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건 놀기뿐인가 하노라.


 집과 밖을 균형있게 넘나들며 잘 놀고 잘 쉬고 성장하는 날들이 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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