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붓하게'라는 말은 주로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 쓰는 말 아닌가? 친구사이에도 쓰는 말인가?
좀 신기하고 신선했다.
엄마랑 나누었던 이야기를 호텔에 가는 차 안에서 친구 완희에게 했더니
"촤하하하하하. 너무 웃겨. 나도 남편이랑 호캉스.... 하아.... 진짜 누워서 휴대폰만 보고 있었던 거 알지?(후에 사진보여줌. 몇 번을 넘겨도 누워있는 사진, 아버님 입원하신 줄) 완전... 수영장에서도 자기 혼자 선베드에 누워있고. 아 진짜, 가족끼린 호캉스가는 거 아니야. 가족이란 뭘까?"
그러게, 가족이란 뭘까. 무엇이 가족일까.
일단 우리는 룸에 도착했다.
방 찾아 오던 길에 터닝메카드와 헬로카봇방을 들켰다.
우리의 방이 소피루비방인 것을 알고 아들은 오열했지만, 다행히 '잠시'정도로 끝났다.
화장실에서도 소피루비누나들이 쳐다보고 있다보니 조금 멋쩍어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다음 번엔 아들이 원하는 캐릭터룸으로 준비하기로 약속했다.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란 뭘까. 가족이 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존속을 위한 노동력생산,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도가 지나친 (성범죄를 포함한)범죄는 주로 가족 안에서 일어나고, 그런 역기능적 가족은 그 가족뿐 아니라 학교나 직장 등의 소속집단,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까지 아픔을 준다. 충격적 범죄 중 상당수는 가족안에서 일어났다.
평범한 가족이 역기능적 가족이 되기 까지는 가족의 중심축이랄 수 있는 '부부'의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정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혼 10년 가까이 되어오니 이제야 드는 생각은, 사실 전부터도 해왔던 생각이지만,'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일상인 생활이 결혼생활이랄까, 가족생활이랄까, 그런 것 같다.
어느 소설이었나 영화였나, 이혼한 사람에게 이혼의 까닭을 물으니
"10년이면 오래 살아준거죠."
라고 답했던 부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냥 긴 세월을 대표하는 것으로 10년을 말한건가, 정말 10년은 고비가 오는 시기인가, 살면서 늘 궁금했다.
사랑이 식고 안 식고의 문제가 아니라(물론 그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가족의 책임자로서 해야하는 일, 예를 들어 돈 벌이, 세금내기, 자녀양육, 내 집 마련, 대출상환, 부모부양 등의 일이 인생의 성숙기(황금기나 절정은 아마도 20~30대가 아닐까 싶고)인 30대 후반~40대에게 얹혀져 있다.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고, 맡아줄 수도 없는 일이.
이 모든 일들을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계와 미래를, 말하자면 현실과 이상, 현실과 목표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균형이 잡히기는 할까? 기준점이 어디인지 모르겠는데. 잘 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일까. 완급조절이 쉽지 않네, 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10년차 즈음에 오는 일인가보다.
얼마나 더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돈 들일이 쌓여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퇴직도 가까워오고 있음도 깨닫는다. 퇴직이 가까워오는 만큼 아이들은 자랄 것이고, 부모님과 우리는, 음, '짐은 곧 국가다'라고 루이 4세가 말했다는데(아니라는 말도 있고요), 짐은 곧 가족인가. 짐스러워서 사단이 나는걸까.
당면한 과제가 산적해있다보니 한때 사랑했던 그 이는 그저 동료가 되어 부고소식만 아니면 그냥 그런가보다 할 것 같고 사실 부고소식이 들려도 그냥 그런가보다 할 것도 같다. 무언가를 같이 하고 함께 하고 놀고 한다는 게, 나와 친구라면 노는건데 남편이 끼어들면 미션완수나 과제수행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려서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정서적인 안정을 누렸지만 커가면서는 오히려 불안정해지고 불편했듯이 부부도 그런가ㅋㅋㅋ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하는 일들이 형벌이나 짐 같지 않으면 좋겠는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지만 한편으론 '너만 힘드냐' 싶고, '내가 더 힘들다!' 하고 싶다. 하고 싶을 뿐 이렇게 말한 적은 없다.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나의 작지만 큰 노력이다.
남들은 다 편안해 보인다. 편하게 사는 것 같고.
인생이 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의 인생도 편할 수 없고, 편한 건 인생이 아니다.
그래도 그냥 그래보인다.
짐 같은 아이를 둘을 낳았다. 우울했다. 전쟁같았다. 사실 지금도 전쟁이다. 기저귀를 갈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해야하는 육체노동은 이제 끝났지만 정신적으로 후달리며 아이 둘의 학령기를 맞이한다. 내가 생각하고 각오하는 것 보다 훨씬 부드럽게 인생성숙기를 보낼 수 있게 해줄 키가 얘네에게 달려있음을 안다.
둘이나 되어 짐 같았지만 결국 둘이라서 이 시간에 이렇게 노트북앞에 앉아있어도 되는 호사를 누리니. 일단 가족은 서로 도와야 하는 사이인것 같다. 무슨 삶의 이유, 나의 전부, 살아갈 원동력..이런 것 보다는 그냥 나를 찾지 않는 것으로 날 돕는 것, 친구와의 여행을 가는 것으로 남편을 돕는 것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