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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an 20. 2021

아들의 군대이야기

제 아들은 7살입니다만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으며 남편과 아이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노가리를 까던) 중이었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군대에 가면 몇 밤 자야해?"

 "군대? 음... 한 700밤 쯤?"

 "허억...(급 침울) 엄마 보고싶겠다."

 갑자기 남편이 끼어든다.

 "(초 심드렁)안보고 싶어."

 "어우, 오빠는 왜 그렇게 말해?"

 "진짜야, 안 보고 싶어."

 "안 보고 싶을 때 입대하니깐 군대가서는 보고싶겠지."

 "하루이틀이나 그렇지. 안 보고 싶다니까."

 "어머님한테 일른다?"

 "뭘 일러. 별로 보고싶었던 적이 없어."

 "뭐야. 언제는 잔소리도 그립다더니."

 "그럴 때가 있는데, 보통은 안 보고 싶어."


지인짜 남편은 신혼 때 <나혼자 산다>를 보면서 20살 부터 독립해서 살아가지고 늘 엄마가 그립다고 했다. 당시에 전현무가 "우리 엄마가 저 보다 말씀이 더 많으세요. 어우~~~"이러면 남편은 "우리 엄마도 말 많은데, 엄마 잔소리도 그리워."라고 했다. 지금도 평소에 1일 1전화하는 어머님의 아들이다. 근데 안 보고 싶다니. 허언증인가.


 "난 엄마 보고싶은데, 예쁘니 우리 엄마. 힝!"

 하면서 아들은 무릎에 앉는다.

 장남이긴 한데 막내이기도 해서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고 막 그렇다. 애교는 우주최고라고 생각한다. 딸은 날 닮아 좀 무던하지만 꼭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사랑도 주는 반면, 아들은 애교도 사랑도 눈물도 늘 넘치고 흐른다.


 이틀 정도 지나서 또 아들이 묻는다.

 "엄마, 군대는 꼭 가야되는거야?"

 "당연하지. 건강한 사나이는 우리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가는거야."

 "그럼 그냥 갔다오면 안돼?"

 "군대는 갔다 오는거야. 가서 평생 사는 건 아니야(꼭 말뚝박으란 법은 없어, 라고 말했다가 수정)."

 "700밤 자고 온다며."

 "응. 700밤 정도는 거기서 자면서 형님들이랑 동생들이랑 훈련하고 밥 먹고 축구하고 그러면서 지내는 거야. 아빠도 그렇게 했어."

 "아빠도 700밤 자고 왔어?"

 "야, 라떼는 더 많이 자고 왔어, 임마!"

 "어린 아들앞에서 굳이 생색내냐..아들, 왜 갑자기 군대얘기를 해? 누가 군대얘기했어?"

 "책에 어~ 군인 아저씨들 나오고 어~ 아빠가 군대 가야된다고 하고 어~ 군대가면 700밤 자고 어~ 엄마도 못 보고 어~ 그런다고 했잖아."


 아이들과 읽었던 책에서 군인아저씨, 장군, 의병, 전쟁.. 이런 것들이 있었나본데, 무심히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아들에게는 특별하게 남아있었나보다.


 "근데 군대는 20살 넘어야 갈 수 있어. 너 이제 7살 됐잖아. 3000밤도 더 자야 군대에 가는거야. 걱정하지 마. 20살되면 다른 데서 700밤 자도 될 만큼 더 용감해질거야."

 "(결연한 표정) 알았어."


활력도 넘치고 섬세함도 좀 있는 편:)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함께 누웠다.

 "엄마."

 "응?"

 "군대에 가면..."

 "(아 또! 이제 좀 지겨워짐, 또 시작이냐? 한 숨쉬며)응."

 "핸드폰 가져갈 수 있어?"

 "요즘은 가져갈 수 있다더라."

 "다행이다."

 "뭐가?"

 "핸드폰으로 엄마 찍어가야지."

 ".....?"

 "보고싶을 때 봐야지. 엄마 많이 보고싶겠다... 훌쩍."

 "(꺽꺽꺽꺽←가슴으로 웃는 소리) 어이구, 우리 아들. 엄마 많이 보고싶을 것 같애?"

 "응. 엄마 많이 사랑하니까."

 "(꺽꺽꺽꺽←오열하듯 들썩거리는 복부와 가슴, 웃으면서 참기도 하느라고)엄마 사랑해줘서 고마워. 엄마도 우리 아들 사랑해. 꼭 안아줄게."

 "이렇게 엄마 사랑하는데, 꼭 군대가서 700밤이나 있어야 돼? 흑흑흑흑. 엄마랑 떨어지기 싫은데! 흑흑흑흑."


드디어 오래 기다리신 딸의 등판ㅋㅋ


 "어우, 쟤는 언제까지 군대얘기야? 야, 너 그때되면 엄마 안 보고싶어져. 그리고 너 20살되면 엄마는 늙어서 죽어!!"

저의 딸은 올해 9살이 되었습니다.


 "(이건 또 뭔소리?)푸른아. 죽긴 뭘 죽어. 엄마 겁나 오래 살거거든요?"

 "그치. 엄마 죽으면 안 되지. 아직 할머니도 안 죽었잖아."

 "(아놔. 애들 왜이리 욱겨)그래.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거야! 그린이(아들)도 슬퍼하지 말고 얼른 자. 푹 자야 키도 쑥쑥 자라서 700밤 자도 안아프고 멋진 군인아저씨 되지."

하는 사이에 아이는 잠에 들었다.


(아이들은 어떤 의미로 죽음을 말하는 걸까요? 가끔 죽는다는 얘기를 하면 앞으로 올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될 때가 이럴까 싶을 만큼 막막해집니다.)






 며칠간의 군대 이야기가 웃기기도 하고 지겹기도 했지만 내 사진을 찍어 가겠다는 어린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귀했다. 세상에 누가 그런 사랑을 나에게 주겠나. 나도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의 사랑도 때로는 조건적이고 간헐적(?)인데, 아이의 사랑은 가끔은 서툴러서 그렇지 무조건적이고 귀여운 사랑이다.


 피부관리와 미모관리, 화장법을 특별히 더 배워놔야겠다. 기적적으로 아들의 마음이 입대할 때까지 한결같아서 나의 사진을 찍어가겠다고 하면 부대원들이 여친.... 이건 좀 심하고, 이모? 그건 좀 자존심상하고ㅋㅋㅋ 누나? 사촌누나? 정도로는 보일 수 있도록? 푸하하하핫.


 그러다가 더욱 더 기적적으로 통일이 되어 혹은 그 비슷한 수준이 되어 군대를 안가도 되거나 모병제가 된다면? 음, 그래도 가야하는데. 나는 아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제주도 1년살기를 계획하고 있는 중인데(성격이 엄청 급한 편). 혹시나 자산이 풍성해지면 외국 1년살기 정도. 하핫.


아들아 울더라도 군대는 가야한다.

너 없이 놀고 싶다. 하하.

하지만 아들이 계속 자란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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