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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Feb 21. 2021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신민경

독후감을 썼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작가는 말기암환자다.

글을 쓸 때 무릎꿇고 엎드려서 노트에 썼다고 했다.

제목만 보면 얼마나 비장하고 웅장할지, 죽음앞에서의 말은 얼마나 날카롭고도 뼈를 때릴지, 혹은 신파일지.


아니다.


육체적인 고통 중에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금은 가볍고 생각보다 쉬웠다.

사실 그래서 더 마음이 묵직했다.

오열을 했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젠 좀 그쳐야지 했다.

그래서 다시 읽었고, 또 읽어도 눈물이 났다.


나도 자기 앞의 생에서 이렇게 담담하게 소소하게

아니어도 그런 듯 그렇게 있고 싶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너무 비장하지도 않게 하지만 너무 가볍지도 우습지도 않게.

그때가 호상이든 요절이든, 담담하기를 다짐했다.

다짐은 했지만 실천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내 죽음에 대한 비장한(?) 생각보다는

지금의 삶을,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것들을,

때로는 욕심내면서 때로는 잊은 듯, 모르는 듯 그렇게 살까말까.


모르겠다.

일단은 그냥 살아야겠다. 살아있으니까.

뭐라고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사실은 모르겠다.


표지부터 이렇게 예쁠 일


p.19

 누군가 말했다. 인생에서 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죽음'과 '섹스'뿐이라고. 또 누군가는 말했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으라고. 그들은 진실을 말하니까


 어쩌면 나는 살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엔 기적이란 게 분명 존재한다는 걸 믿길 바란다. 어쩌면 나는 죽을 것이다. 그땐, 죽기 직전까지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가 있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p.26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자에게 닥친 것이 죽음이 아니라 '통증'인 이유는 뒤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앞으로 매 순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고, 그 고통의 강도란 것이 매일매일 더 심해질 거라는 걸 수용하기란....살면서 부여받은 어떤 미션보다 힘겹고 어려웠다.

(삶과 죽음 사이에 '통증'이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다. 통증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다)


p.35

 매사 잘 참고 견뎠다. 인내와 끈기 하면 나였다.

 근데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사실 내가 두려운 건 죽음 같은 게 아니다.

 매일 조금씩 진행되는 나에 대한 믿음의 상실,

 자신감의 상실 같은 것이다.


p.55

 잠시 잠들었다가 늦은 밤에 깼다. 메스꺼움을 견딜 수 없어 공원으로 나갔다. 엄마는 내 열 발자국 뒤에서, 아빠는 그런 엄마의 먼발치 뒤에서 따라 걸었다. 세 번쯤 토할 것 같아서 그만큼 욕을 했다.


 (통증이 굳이 암성통증이 아니라도 생리통, 두통, 치통.. 많은 류의 통증을 겪어왔다. 그럴 때마다 정말 짜증나고 죽고 싶고 정말 그 통증이 얼마나 고통인 줄 알면서도 나에게는 지나가는 통증이니까 통증에 대한 깊은 생각을 안해봤다. 이런거구나.. 괴롭다. 상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출산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느껴봤지만 그세 까먹고 산다. 지나갔으니까, 지나갈 거니까)


p.60

 ...나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돈이 없다는 걸 들키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런 내게, 암은 가진 돈을 전부 까먹고, 가족의 돈까지 다 쓰게 만들고, 소중한 이들에게 살고 싶다고 울고불고 매달리며, 감당하기 벅찬 빚 까지 떠넘기고 떠나게 되는 후레자식 같은 병이었다.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본 내 동생의 인생, 내가 그 앞길을 막을 순 없었다.



발췌할 것이 없어서 더 안쓴게 아니다. 눈물도 났고, 다 베껴쓸 수도 없고..그래서 그랬다.


관장의 방법, 유서, 추천책목록 부터 해서 그냥 소소한 일기인듯, 더 살아갈 사람들에 대한 당부 혹은 연서 등이 들어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의미가 있어서 태어나고 살고 하는게 아니라

태어났으니까 의미를 만들며 사는 게 인생이지 않겠나.


의미를 만들려고 열심히 산다.

부지런하게, 노력하면서, 열심히.

죽음 앞에 당도했을 때 그동안 만들어 놓은 의미가 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죽은 이가 흔적으로 영원히 남아

산 사람을 위로하고 의미에 한 결을 더하고 그러겠지.


그렇게 즐겨 찾는 미술관도, 문학관도, 기념관도..

그들의 생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내 곁으로 끌어와보고자 그들의 의미에 나도 좀 얹혀보고자 그렇게 그랬다.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하루라고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옥상으로 올라가던 그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지 않았던 하루를 사는 것이다' 라고 김영민 교수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에서 말했다. 내 하루의 농도는 그 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생에 대한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거나 좀 더 이타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사실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나의 형편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살아 있는 동안엔 돈을 벌 것이고, 돈을 버는 이유는 샤넬 가방과 구두를 사기 위함일 것이다.


 그보다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면 사실 땅을 사지 기부금을 많이 내는 삶을 살진 않을 듯 하다. 이런 이유가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러고 사는 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려고 태어났다. 아니, 태어나서 이런 류의 삶의 의미를 만들었다.


 다만 나는, 내 생활에 우울을 들이는 빈도를 줄일 것이며 죽음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우울과 죽음 대신 신민경 작가님의 남은 삶의 안정을 그리고 더 깊이는, 기적을 바라는 기도와 생각을 할 것이다.

이토록 소소하고 담담하게 생의 끝을 말하는 분이라니.


 아픈시간을 내어 메세지를 준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출판순서를 바꾸어 빠르게 출간해주신 출판사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나에게 닿은 것. 이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살고 싶어요.

살아있습시다.

살기로 해요.

살아서 만들어지는 의미들을 다 목격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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