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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pr 17. 2021

전업주부되기 1년 준비과정, 뭘 준비하나.

 전업주부가 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에 대해 토로한 글,


https://brunch.co.kr/@kimojung/142


 스포, 이유가 없는 것이 이유다.

 굳이 이유를 착즙해보자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자 하는 마음.


 퇴사를 꿈꾸는 사람이 갑자기 퇴사할 수 없듯, 나도 무언가 준비를 해야 전업주부의 삶에 그나마 잘 적응할 수 있을텐데 난 뭘 준비해야할까. 뭘 준비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마음가짐이려나. 마음은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준비한다고 준비되는 마음은 아닐 것도 같다. 그래도 마음만은 비장하다. 나의 현재 직업이 풀타임직업은 아니기에 반은 전업맘이고 반은 워킹맘인데, 실생활에서는 전업맘이라고 좀 그렇게 보거나 워킹맘이라도 더 그렇게 보는 시선은 없다. 일단 나의 시선에선 그렇다. 전업이든 워킹이든 다 힘든거다.


 그래도 너어어어무 힘들었던 신생아기와 영아기를 지났으니 힘듦의 최고점은 꺾었다. 이제는 그냥 인생이 힘든거라고 하는 게 낫겠다. 누구에게든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은 힘들다. 그 힘듦을 다시 한 번 받아 들여야 한다.


 내가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다시 확인하고, 뿐만 아니라 '편하게 살려고 퇴사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시선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고 하기 보다는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을 인정할 여유가 있어야겠다. 출근하지 않음을 통해 편함을 맛보려는 의도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므로.


계절의 기운을 가득 느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업주부의 꿈을 꺾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이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저께 수요일.

 우리 동네 일대는 비상이었다. 아파트 단지 근처의 학원장이 ㅋㄹㄴ에 확진되었고, 확진되기 전날까지 수업을 했던 것. 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대거 옆 학원도 맞은 편 학원도 다니고 하다보니 단지 일대 학원들은 휴업에 들어갔고, 학교에서는 거의 분 단위로 공지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저학년이라 원래 일찍 하교하긴 했는데 고학년 아이들도 모두 조기하교조치를 내렸다고 했다. 밀접접촉자 및 접촉자들의 결과가 나올때 까지는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목요일은 급하게 휴가를 냈고, 오전에 잡혀있던 약속도 취고하고ㅠㅠ 둘째는 등원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발 감염이 아니므로 등교수업은 유지한다고 했고,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해서 점심은 집에서 먹기로 하고 등교하기로 했다.


 나름 비장하게 맞은 목요일 아침, 오전 11시경이었나. 검사자들 모두 음성이 나왔다고 공지가 왔다. 마음이 놓이면서 유난이었나, 괜히 휴가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기에 아이들과 투닥투닥 하루를 보냈다.


 ......전업주부로 살 자신감을 잃었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일상은 일상,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것은 마치 강제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좋아하는 유튜브지만 프로그램이 안바뀌어. 계속 같은 것만 보는 기분? 가끔 채널에 변화를 주고 자세도 변화를 주며 즐겁고 신나게 봐야 하는데 채널의 주도권이 내게 없으므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유튜브임에도 '대체 언제 끝나, 좀 그만 보면 안되나' 하는 기분이 드는, 뭐 그런 기분이었다.

 

 출근을 하며 다른 공기를 마시고, 다른 커피를 마시고, 다른 옷을 입을 수 있었던 은혜를 자발적으로 거절할 용기가 있는 사람인가, 내 스스로에게 의심했다. 내 노동력을 바쳐 시간의 노예로 사는 삶이 나에게 더 맞는 삶인가 싶고. 정작 내가 준비해야할 것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모성애영원회귀와 같은 일상을 존중하며 버텨갈 존버지구력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는 자타공인 모성애결핍이며, 지구력은 재수실패와 함께 내 인생에서 지운 단어이다. 굳이 이 단어를 소환해와야 하나.


 무라야마 겐지의 <취미있는 인생>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무라야마 겐지는 대작가답게 참 멋지게 표현했다.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하겠다. '쓸데 없는 것에 대한 동경',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내 어릴 적 꿈' 뭐 이런 식으로..


 어렸을 때 피아노치는 것을 좋아했고, 글짓기를 잘한다는 얘기를 왕왕 들었다. 하지만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은, 잘하긴 하는데 '그렇게' 잘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육특성상 입시까지 끌고갈 만한 것이 아니면 그야말로 취미로 끝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엄밀히 말해 취미활동조차 금지되는 분위기였다.


 중고등학생이 "취미삼아 피아노학원 다녀." 하면 "그럴 시간 있음 수학 한 장 더 풀어."라는 말을 들었을테고, 지금의 나도 그때의 관점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공부를 피아노치기보다 잘하지 못하고, 글짓기보다 잘하지 못했음에도 피아노나 글짓기를 입시까지 끌고 갈 담력(?)은 없었기에 그 때 그 수준에서 놓았던 것이다.




 전업주부가 되어 지금보다 나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입시까지 끌고갈 만 하지 못했던 나의 '취미'라고만 하기엔 아까운 것들을 다시 들춰볼까. 유튜브를 강제로 시청해야만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내게 '생각의 자유'라도 쥐어준다면 그래도 '시간의 노예'에서 '시간과 동행'정도로 승진할 수 있지 않을까.


 .... 한 켠의 걱정. 취미 생활도 결국 돈이 문제. 돈돈돈.

 삼성전자 배당금 들어왔던데, 주식을 얼마나 사놔야 배당금을 내 월급수준으로라도 받을 수 있는걸까.


 남은 인생의 전업주부가 아니라 '전업주부로 1년 살기'로 해서 좀 더 구체적인 계획, 하고싶은 것들을 정리해볼까.


 마음은 떴어도 일은 계속 해야하고, 뭘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살아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게 지금인가보다. 이제 맞은 40대에 아직 '내려놓음'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뭘 갖다 채우기엔 어차피 만족이 없을 거란 것을 알고 있다.


 설거지하면서 봤던 유퀴즈,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말이 진하게 남았었다. 지금 또 생각이 났고.

 


 이거 뭐 대단한 결심이고 대단한 글이라고 2시간 넘게 노트북 앞에 매달려 있다. 읽으면 읽을 수록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 문단마다 툭툭 끊어지고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고 머릿속에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어도 글쓰기 창을 열면 하예지고 리셋되고 메모를 해놨지만 무슨 의미의 메모였는지도 까먹었다.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걸 보니 역시 "변화"는, 더 어려운 쪽으로의 변화든 쉬워보이는 쪽으로의 변화든 쉽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일단은 하루의 성실함을 보태는 것으로 며칠을, 아니면 몇 달을 보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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