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학교에 보내고 둘째의 등원준비중이었다. 문자가 왔다. 요즘 중요한 일은 오히려 카톡이나 전화지 문자인 적은 별로 없다. 뭐 요금내라는건가, 뭐가 결제되었다는건가..무심히 확인을 했는데 절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소식이었다.
너무 놀랐다. 안부도 생략한 채로 영양가없는 말을 카톡으로 주고 받으며 히히덕거리느라서로의 시간을 축낸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부고소식이라니.
친구의 아버지는 4-5년 정도 투석중이셨다. 딱히 악화되거나 나아지는 것 없이. 그 일이 투병이라면 투병생활을 일상처럼 해오셨다. 다만 최근에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확진자의 동선에 따라 투석하는 병원을 바꿔야 했고 운동다니시던 것도 중단할 수 밖에 없게 되자 조금 예민해지셔서 런닝머신을 사드렸다는, 우리 엄마가 주기적으로 고혈압 약을 받아야 하는데 다니시던 병원 의사가 코로나에 걸려 난감한 채로 2-3주를 그냥 보냈다는 이야기와 별 다를 바 없는 무게의 이야기들을 나누었었다.
이것이 우리 일상과 수다의 한 부분이었다. 일상의 한 부분, 수다의 한 부분,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십 년 전엔 함께 스페인여행을 갔었답니다. 아이들이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안하고 이모랑 결혼했냐고 묻기도 했었어요^^
문자확인과 함께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밤 늦게, 주무시다가, 평소와 똑같이, 식사도 다 하시고, 빈소는 마련했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친구도 나도 오열중이었다. 일단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자 해맑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들.
"엄마 왜 울어?"
"엄마 친구ㅇㅇ이모 아빠가 돌아가셨데."
"어디로 돌아가?"
"하늘나라에 가셨데."
"그럼 걸어서 가야 돼?"
".......그러게. 어떻게 가야하지?"
"멀어서 힘들겠다. 걸어서 갈 수 있데?"
"........"
평소 죽음에 관심이 많아 보이던 아이가 진짜 죽음앞에선 웃어도 되나 싶은 질문을 심각하게 한다. 나는 서둘러 아이에게 옷을 입혀 남편의 출근길에 등원을 맡겼고, 장례식장에 간다는 다른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가기로 했다.
아침상을 다 치우지도 못한 채로 씻고 옷을 고르는 와중에 입을 옷이 없기도 한데 뭐가 그나마 날씬해 보일까를 생각했다. 일어나자마자 돌렸던 세탁기가 다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 탁탁 털어 널던 것을 탁 정도만 하고 널면서도 계속 눈물이 차올랐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져, 괜찮아질거야, 괜찮아.. 수없이 되뇌었다. 그 와중에 치마가 나을까 바지가 나을까를 동시에 생각했다. 괜찮아, 괜찮아...
근데 조부모님이 아니라 부모님의 부고라니.
작년 어느 날, 아이들 다 학교가고 어린이집 가 있는 오전 시간에 엄마가 전화를 했다.
"집이니?"
"응"
"나 좀 가있어도 되니?"
"그래, 와. 뭔 일 있어?"
"니 아빠 우울해서 자리 좀 피해주려고."
아빤 요즘 여성호르몬이 샘솟고 있어서 예민.. 아니, 섬세하신 중이다. 풋 웃으며
"가을 지났는데 우울하데?"
"너 아빠 친구 ㅇㅇㅇ씨 알지? 왜 너랑 동갑 ㅁㅁ아빠."
"어, 알지."
"주말에 ㅇㅇ씨 돌아가셨어. 아빠 장지다녀와서 편하게 쉬라고 하게."
아빠는 가끔 친구의 부고를 듣는다. 나는 가끔 가깝거나 먼 친구 부모님의 부고를 듣고. 아직은 낯설다. 죽음의 소식은 익숙해질 수 없겠지.
집 앞에 도착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다 널지 못한 빨래는 그냥 두고 집을 나섰다. 우리 아파트의 승강기 속도는 좀 느리다. 내려가는 중에 주식어플을 켜서 주식의 안부를 확인했다. 지난 주엔 조금 빨게지길래 그 동안 답답하게 했던 대우건설과 지에스건설 주식을 다 매도했다. 5~10%정도 올랐길래 그냥 청산하고 다른 성장주로 갈아타려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오늘은 내가 매도한 가격보다 10%씩 더 올라있었다. 그 와중에 예수금 있는 걸로 사고 싶었던 주식에 매수주문을 넣는다. 눈물이 차올라 눈이 촉촉한 와중에도 나는 할 건 다 하고 있있구나. 나 겁나 이성적인 사람이네.
20분이면 가는 병원 장례식장인데 1시간이나 걸렸다. 친구를 만났고, 우리가 첫 조문객이었다. 우리는 보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가
"나 어떻게 해야 돼? 여기 서 있으면 되는거야?" 라는 친구의 말에 서로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사회생활을 15년 넘게 했으니 결혼식도 조문도 많이 다녔다. 돈이 궁할 때는 경조사를 다 챙기기 부담스러워 경사는 적당히 둘러대고 조사를 주로 갔다. 그래도 조사는 늘 낯설다.
엄마는 정기적인 지인모임이 있었지만 작년 코로나이후로 모임이 뜸해졌거나 중단된 상태다. 안부를 아는 일은 전화나 아니면 따로 만나야 가능했다. 모임이 뜸해진 사이 친구 한 분은 유방암이 발견되어 수술 후 요양하러 가셨고, 한 분은 조직검사를 권유받아 검사날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그 연세즈음에 무소식은 무서운 소식이다. 공사다망 다사다난하게 보냈던 날들이 은혜를 병으로 갚나 싶다. 서로 조심스러워 뜸하게 보내는 사이 누구는 암투병을, 누구는 암진단을, 누구는 사별을... 예기치 못한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며 산다.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식사를 하시고 늘 누우시던 시간에 누우신거라고 했다. 주무시던 중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심정지. 우리 부모님께 친구의 일을 전했더니
"......근데, 잘 된거야. 자식들은 힘들겠지만." 이라고 하시며 아빠 친구들 사이엔
"자다가 죽으면 로또야."라는 말도 있단다.
그게 누구를 위한 로또야? 싶어 또 울컥했다.
당사자에겐 잘 된거고, 남겨진 사람은 힘든거다.
아버지를 보내는 힘들고 괴로운 와중에도 매사 어이를 잃게 만드는 아이들 얘기, 늘 어이없는 남편얘기, 늘 감사하지만 말로는 못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눈물이 흐르는 와중에도 입으론 웃으니 산 사람은 살아있구나 싶다. 슬픈 와중에도 웃음을 찾는, 호흡처럼 웃을 수 밖에 없는, 웃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어이없는 유머가 필요한 나약한 존재인 우리들.
조문으로만 가봤지 상주노릇은 한 적이 없어 조의금을 받아서 어디에 놔야 하는지, 화환은 어떻게 받아 어디부터 채워야 하는지, 뭘 언제 하기로 결정해야 하는지, 사인은 하라는데 해도 되는 사인인 건지.. 상주는 인사하고 식사챙겨야 하는데 잡일을 도울 이가 없어 남편이 반차를 내고 도우러 갔다.
사장님께 사정얘기를 했더니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다녀오면 거래처(?)인 high닉스나 3성 출입할 때 곤란할텐데, 하며 난색을 표하셨다고 한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본다. 직계도 아니고 친구의 일이니까. 죽음앞엔 다양한 반응이 있다.
아주 먼 이야기였던 죽음이 서서히 가까이 다가온다. 인생의 한 부분이지만 가장 가까이 올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을 죽음의 일. 나는 이렇게 생의 경험치 하나를 쌓으며 망각이라는 시간의 선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