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딸이다. 딸은 올해 9살이 되었다. 7살이 되었을 때 부터 자전거를 사줘야할텐데 하며 생각만 하고 있다가 여직 사주지 못했다. 딸 아이는 씽씽카 타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부모인 내 입장에서는 우리가 사는 곳이 오래 된 아파트라 지상으로 차가 다니지 않는 요즘 아파트단지 같지 않아서 자전거 태우기 좋은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도 했다. 아이도 딱히 자전거 타령을 하지 않아서 잊은 듯 지냈다.
작년에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동생과 엄마가 자전거를 사줄까 하셨었는데, ㅋㄹㄴ열풍으로 그냥 접어두고 있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씽씽카는 좀 유치해졌고, 동네에 학교 운동장이나 널찍한 복지관 앞마당 등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보면 딸은
"엄마, 나도 자전거 사 줘."
라고 말을 하긴 했었는데
"추운데 자전거 탈 수 있겠어?"
"음... 그럼 봄 되면 사 줘."
"그래, 봄 되면 사러가자."
정도로 대화가 끝났었다.
운동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 나는 적극적인 편이다. 내가 국민학교에서 했던 체육 활동 중 기억나는 것은 달리기, 뜀틀, 구르기 정도인데 제일 먼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이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 22초인가 그랬다. 거의 꼴찌수준이다보니 내 스스로도 '나는 운동 못하는 애'라고 단정했다. 내가 나를 운동 못 하는 애라고 생각하니까 뜀틀도 구르기도 자신이 없었고, 나는 못할거라고 생각했고 진짜 나는 못했다. 지금껏 뜀틀 한 번 깔끔하게 넘어 본 적이 없고 구르기는.. 앞구르기 기억은 있는데 뒷구르기 기억은 없다.
고학년이 되면서 17초대로 기록이 당겨지기도 했는데 '선생님이 대충 쟀나'라고 생각했고, 오래 달리기는 선두권이었지만 '오래 달리기는 운동신경이랑 상관없잖아'라고 생각했다. 못났다, 증말.
성인이 되고 나서 배운 수영과 플라잉요가, 스케이트에는 나름대로 특출난 재능(?)을 보였고, 등산은 날다람쥐급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왜 나는 나를 '운동 못하는 애'로 20년 넘게 단정지었나! 100미터 달리기 22초라는 첫 기억의 서글픔 때문이었나보다.
달리기를 못해도 자전거는 잘 탈 수 있고, 축구는 못해도 수영은 잘 할 수 있고.. 등등 운동과 운동간에는 딱히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과 모든 운동은 배울 땐 어려워도 배우고 나면 즐겁고 유쾌한 일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성취감을 빠르고 능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운동이 아닌가 생각했을 때, ㅋㄹㄴ도 ㅋㄹㄴ지만 자전거배우기를 더 이상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얼마 전, 친구네와 만나 놀이터에서 놀던 중, 친구가 딸에게 맥락없이 얘기했다.
"그린아, 아빠한테 자전거 사달라고 해. 저기 자전거 타는 애들 되게 많다."
"아빠는 안 사줄거에요."
"응? 아빠가 안 사줘?"
"네, 우리 아빠는 그런 거 안 사줘요."
하며 물을 마시고는 놀던 곳으로 뛰어갔다.
헐.
남편의 인생모토는 "돈은 안쓰는 것이다"이다. 그래도 나는 기필코, 단연코, 단 한번도 아이들에게 절약정신이 투철한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푸념을 한 적이 없다. 그냥 나는 남편면전에 짜증을 내지 아이들에겐 티낸 적이 없는데... 나만의 착각일수도 있고, 남편의 극절약생활이 아이들에게도 눈에 띌 수준이었을 수도 있다.
2주 전, 남편은 사랑니를 발치했는데 상당히 위험한 위치여서 종합병원에 가서 '수술'이라는 명목으로 사랑니를 발치했다. 한 일주일은 아파해서 주말엔 내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공룡박물관에 다녀왔다.
남양주에 있는 미호박물관, 남한강을 끼고있어 뷰가 예술입니다. 주말나들이로 추천해요:)
아이들 데리고 나서려는데 남편이 말했다.
"너네 아빠없이 잘 놀 수 있겠어? 아빠랑 놀아야 재밌는데, 그치?"
"아니야, 아빠 쉬어."
"왜? 아빠랑 놀아야 재밌잖아."
"아니야, 아빠 있으면 우리 까페가기도 좀 그렇고..."
.........일동 웃음........
어쩌다 카페에 가도 남편은 안 마시거나 자리를 차지하기 좀 그러면 아예 밖에서 기다리거나 그랬었다. 아이는 다 느끼고 있었나. 카페나 자전거는 생필품영역이 아니라 사치품영역이라는 것을.
"우리 아빠는 그런 거 안 사줘요."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아 당장 자전거 검색에 들어갔었다. 예상하시다시피....
당근마켓으로....
아이의 키가 18인치가 나을 지 20인치가 나을 지 좀 애매해서 태워보고 결정해야 안전하겠다 싶어 온 가족이 자전거포에 가서 감히 새 것! 새 자전거!를 사주기로 했다! 보호장구도 사야하는데 남편은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모르겠다.
나는 사실 아직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못 타지 않을까 싶다. 배워서 탈 줄 알게 되긴 했어도 '나는 못 타는 편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문제집을 사주시면 사주셨지 자전거나 축구공 등은 사주시지 않는 라떼 부모님이셨다으아.
아무도 없는 광활한 광장에서는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15년 전에 타봤으니까. 내 생각의 기저에 깔린 '운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은, 달리기만 느릴 뿐 다른 운동은 배우면 잘하는 편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산 지 오래됐어도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두려움의 장벽은 좀 높은 편인 것 같다.
아이가 의욕을 보일 때 바로바로 도전하게 해주고 싶고, 결국 '어려워요, 못 하겠어요'가 된다고 하더라도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어'라기 보다는 '다른 걸 배워볼까'라고 말해주고 싶다. '노력하면 잘 할 수 있어, 열심히 하면 못 할게 없어, 불가능은 없어' 이런 말 지겹다. 나는 라떼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자전거가 아니라도 배울 수 있는 운동은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