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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ul 21. 2021

딸 있는 엄마의 로망

한 때는 로망, 지금은 현실

 딸도 아들도 다 소중하다.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 될 거지만(장가를 갈 수 있을 거라는 전제로) 딸은 영원한 내  친구라고 하니 아무래도 딸은 좀 소중하다. 필요하기도 하고.


 근데 감수성있는 딸래미라 좀 조심스럽다. 9살 밖에 안 된 아이지만 가끔은 날이 확 서가지고는 내가 얘랑 언제까지 같이 살 수 있을까 싶다. 배고픔만 채워주면 대부분이 해결되는 단순한 아들에 비해 딸은 배고픔을 채워주는 방법뿐 아니라 채워주는 태도까지도 관찰하고 있으니 좀 신경이 쓰이고 성가시다.


분당에 있는 도넛드로잉카페, 정원이 넓어 좋습니다. 지금은 넘 덥지만요

 그래도 넌 영원할 내 사랑.

내 어린시절과 지나치게 똑 닮은 너는 그냥 나.

나 때메 엄마아빠 멘탈 많이 힘드셨지 생각하며 딸래미를 부서지도록 안아주곤 한다. 그러면

"아 왜이래 진짜! 답답해! 그냥 말로 해!"


훗. 나랑 존똑.




 몇 달 전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마티스 특별전이 있었다. 야수파의 시작, 피카소의 라이벌로도 알려진 마티스. <춤>이라는 그림과 카페에서 많이 본 것 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마티스는 책과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로 알았을 때보다 더 매력있고 멋진 사람이었다. 마침 친구가 통신사 할인으로 반값에 표를 살 수 있다고 해서 딸과 한 번 더 갔다.


 평일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좀 신경은 쓰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딸을 보며 내심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내가 갔을 때 도슨트에게 들은 정보들을 딸에게 속삭여주었는데


 "알았어, 엄마. 내가 알아서 볼게. 내가 물어보면 말해줘."

라고 해서 좀 뻘쭘했다.

그래, 넌 너의 길을 가렴. 끝까지 가렴, 이 녀석아!


 집에 있는 마티스에 관련된 책을 읽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유료전시를 보는데 아이에게 배경지식이 충분히  없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반값이라고 해도 돈은 돈이니까. 되도록이면 유명한 작품을 더 유심히 봤음 싶은데 딸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삽화와 선화에 더 집중했다.


 "엄마. 그림은 사진찍으면 안되지?"

 "응, 안되지."

 "그럼 엄마 메모할 수 있어?"

 "어, 왜?"

 "이 그림 제목 좀 저장해 줘."

 하면서 두 번째 온 나도 처음 보는 것 같은 삽화 그림 제목을 적었다.


 좋아하던 몇 가지 그림 제목을 저장하고 마티스 특유의 기법이었던 컷오프(오리기)를 경험하고 미술관을 나왔다.


 "전시 봤으니까 엄마 스벅가야지. 이 근처에도 스벅있나?"

 헐ㅋㅋㅋㅋㅋㅋ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딸이라니, 정말 사랑스럽구나.

 "당연히 있지. 같이 가줄거야?"

 "응, 나는 고구마말랭이 먹을테니까 엄마는 커피마셔. 전시 보여줘서 고마워."


 나는 전시관람을 좋아하고 책도 음악도 좋아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것이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대체 뭐가 맞았던 건지 모르겠고 다행히 딸과는 맞는 취미를  발굴해냈다.




 4월 말엔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작은 리사이틀이 있었다. 문화가 있는 날 행사라 무려 5000원에 그의 연주를 직관할 수 있었다.


 김동률이 <전람회>라는 이름으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1993년. 그가 피아노치며 노래하는 모습과 목소리에 반해서 지금까지 거의 30년을 좋아하는 중인데, 그의 어느 앨범에 피아노 연주곡이 수록되었던 적이 있다. 연주한 이가 김정원이라고 했다. 그 이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다.


 추적하다보니 그의 연주도, 가끔 매체에서 인터뷰하는 낮은 목소리와 위트도 참 좋아서 김동률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조금은 덜한 마음으로 김정원도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의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다니, 20대때도 공연이 있다고 할 때마다 티켓값과 직장의 일정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포기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아직 기회가 남았다니! 무한영광이었다.


 올해 초 부터 피아노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딸에게 같이 가겠느냐 물었더니 바로 오케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주회에 한 시간이나 빨리 도착했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본격 연주에 앞서 연주할 곡과 작곡가에 대해서 직접 설명해주셨다.


 슈베르트, 모차르트, 베토벤의 곡이었는데 워낙 유명한 곡들이라 딸 아이도 익숙해하는 것 같았다. 50분 가량 무대 말고는 어두운 곳에서 마스크를 끼고 이동없이 감상해야 하는 것이 낯설거나 무서워할까 염려되었는데 아주 잘 앉아있었고, 다음에도 또 연주회에 가고싶다고, 피아노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소음과 음악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 말소리 말고는 다 시끄럽다며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근데 휴대폰에 저장해놓은 음악들은 롹이나 헤비메탈.


 연주회에 다녀온 우리에게 남편은 롹의 계절이 다시 돌아오면 자기도 콘서트에 보내달라면서 아들과 기타치는 흉내를 내며 퀸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들은

 "누나는 피아노 학원 보내줬으니까 나는 드럼학원 보내줘"

 거기에 보태 남편은

 "지금 이 흥이라면 나는 노래방으로 뛰어가야 하는데! 아으아아아아악!!"


 우리 지금 클래식연주 즐기고 왔는데 헤비메탈에 드럼과 노래방이 얹어졌다. 역시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 우리 모두가 클래식만을 들으며 인상파 작품만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면 가족으로 묶인 운명공동체라도 정말 재미없었겠지.

클래식과 인상파는 아직 시작도 안 한 일이긴 합니다만.




 딸 과의 외출이 딸의 인생에 획기적인 일이었는지 아닌 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만한 일들은 무수히 많이 있을 것이다. 획기적인 일과 그냥 그런 일들이 딸의 삶을 채울 것이다. 풍요와 결핍을 오가면서.


 딸은 여전히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친다. 예상과 다르게 캐릭터그리기에 심취해있고, 체르니보다는 아이돌 노래 편곡된 것을 더 많이 친다.


이런저런 기회를 주는 것도 사실 돈이 들긴 하네요 피아노를 샀습니다..... 중고나라에서요ㅋㅋㅋ


 

 아이의 잉태부터 내 맘 같지 않았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하든 내 맘 같을 일은 없을 거라고 마음먹는 것이 나을 것이다. 딸 과의 연주회와 전시회가 내 예상과 다르게 너무 좋았듯이. 혹여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길 것이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닌 일들.


 그래도 아이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많아지길,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넉넉히 맞춰줄 수 있는 내가 되길,

내 맘 같지 않은 딸에게 딸 맘 같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 어려울 걸 알면서도.


지금은 눈앞에 없으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사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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