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주지 않은 부담감
얼마 전에 내 고3과 재수시절을 떠올리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해보자니, 멀기도 하면서 가까운 과거이다. 그 때 입고 다녔던 교복과 촌스럽기 그지없는 스머프색 체육복, 색색깔로 챙겨다녔던 하이테크 펜들이 생각난다. 수험생으로 사는 생활이 얼마나 고단하고 서글펐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그다지 고단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지금 사는 내 삶에 별로 불만이 없어서 일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의 상황에 따라 과거는 나름대로 각색된다.
몇 주 전 월요일 아침, 비보를 안고 그림책모임에 갔다. 모임을 마친 뒤 아침에 뉴스 보셨냐며 이야기가 나왔다. 모임의 사람들은 학생보단 부모에게 가까운 입장이기에 부모된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방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첫째가 지금 고3인데, 얘가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그 학교에 고등부 과정이 없어서 그냥 일반고에 들어갔거든요. 나는 얘한테 공부하란 말 거의 안하고, 요즘 학교 선생님들도 공부해라 그런 말 안한다 하드라고요. 우리 때는 공부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야 취직하고 시집하고.. 뭐 그런 말들 했잖아요? 선생이건 부모건.
근데 요즘은 그런 말을 안해요. 안한다고 하더라고. 근데도 애가 막 부담을 엄청 느껴요. 공부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수업이나 여러가지 방향성이 입시에 가있으니까 가만히 숨쉬고 있기만 해도 느끼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거에요.
여기 오시는 엄마들도 상당히 노력하는 엄마들이거든요. 다그치지 않으려고 되게 애쓰고 마음 다잡고.. 그러려고 여기 오시는거죠, 사실. 근데 애들이 완전 쩔어있어. 말이 안되거든, 우리 입장에서는. 누가 너한테 공부하라하냐, 안한다고 혼내길 하냐, 뭐가 그렇게 스트레스 받냐고.
근데 다른 어른이나 친척들이 막 고3이라카면, '아이고야 너 힘들겠다, 괜찮니?' 이러시는데 '어, 나 안힘든데. 힘들어야되나? 나 이상한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집안 분위기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또 애나 애 주변의 상황들이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애 한테 주는 압박이나 부담이 있어요. 부모는 '나는 안그러지 않냐'고 하지 애 입장을 섬세하게 들여다보진 못하니까. 그러니까.. 이게 부모자식간의 강이 깊고 길어. 너무 어려워요. 저도."
그냥 띵 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압박하지 않아도 상대는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사실 나도 그랬었다. 부모님이 몇 점 받아라, 몇 등 해라(했으면 좋겠다 등)라고 콕 집어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부모님이 평소에 보이신 교육열과 찾아서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리는 매스컴에서의 말과 소식들이 충분히 나에겐 부담 그 이상으로 다가왔었다.
내가 입시를 준비하던 20년... 으악, 벌써 20년... 20여년 전에 비해 지금은 입시방법도 다양화(라고 쓰고 복잡하다고 읽는다)되어 엄마의 관심과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입시에 중요한 요소라고 하던데. 이렇게 웃으며 해도 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입시가 중요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있겠나. 그 중요한 입시를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중요할텐데. 막상 통과하고 보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인 것에 반해 나를 비롯한 많은 부모들은 알면서도 그 나이대엔 정말 대단한 것이기에 완급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
죽음의 이유를 다 알 순 없다. 나도 이렇게 멀쩡히 글을 쓰고 친구와 영양가 1도 없는 카톡을 나누다가도 베란다 밖을 보며 다른 생각이 스친 적이 여러 번이다. 그래도 삶을 붙잡는다. 그 이후가 되면 지금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테니.
늘 깨닫지만 늘 힘들고 늘 괴로운데 또 늘 지나간다. 지나가긴 한다. 멈춘 것 처럼 더디고 느려서 그렇지.
그래도 삶을 붙잡아 그 너머 세상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입시와 학폭, 왕따 등의 문제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