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저녁은 잘 안먹는 편이라 가족들 저녁 챙겨주고 나는 가족들이 남기길 바랐던 돈가스, 두 조각 남겨준 것에 감사하며 돈가스 두 조각을 먹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던 중에 갑자기 배가 아팠다.
나는 설거지에 대해서는 나만의 패러다임이 있기 때문에 누가 내 설거지를 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 남편도 친정엄마조차도. 나만의 패러다임에 따라 설거지를 끝까지 마치고 화장실로 갔다. 막상 설사도 아니었는데 왜이리 아팠는지.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아파서 나는 8시부터 몸져 누웠다.
밥을 먹었으니 에너지가 충전된 아이들은 시끌시끌, 누워있는 엄마가 찬스였던건지 엄마 이거 해도 돼 저거 봐도 돼 그거 먹어도 돼... 아, 묻지말고 니네 알아서 하라고 빽 소리를 질렀더니 남편이 데리고 나갔다.
보통 한 번 놀기 시작하면 2시간은 노니까 10시쯤 들어오겠지 싶었다. 다음 날 학교보낼 일이 걱정이지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며 누워있는데 아이들이 너무 빨리 들어왔다. 헐. 수근수근 숙덕숙덕대는 소리에 왜 벌써 데리고 들어왔냐고 따져묻고 싶었지만 소리지르는데 힘 쓸 바에는 죽은 척 누워있는게 나았다.
근데 이 아이들....
"엄마, 엄마 아프니까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 사왔어."
하며 방에 들어오는거 아닌가!
남편의 설명으로는 애들이 아빠는 들어오지 말라며 자기 둘이서만 편의점으로 들어가더니 첫째는 자기의 일주일 용돈 1500원보다 500원이나 더 비싼 스벅커피를 오로지 나를 위해 사고, 용돈을 따로 받지 않는 둘째는 그런 누나에게 거금 1000원을 들여(예전에 아빠랑 둘이서만 친할머니댁에 갔을 때 받은 금일봉을 야금야금 쓰는 중) 초코에몽을 사줬다고 한다.
아우, 감동의 눈물이 나, 안나?
배 아픔을 이기고도 남은 감동
나는 진정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
편의점에서 파는 스벅커피는 비싼 편이라못 사먹는 커피인데, 진정 감동이었다. 어떻게 저런 착한 마음이 생겼을까. 전재산을 털어 엄마를 위한 커피를 사다니.
둘째는 특히나 초코음료를 좋아하는데 자기의 초코를 포기하고 누나에게 양보를 하다니. 어렸을 때 머리카락 팔아 선물을 샀다는 내용의 동화도 막 생각이 나면서 정말 깊은 감동이 차 올올랐다.
누굴 닮았을까 이 아이들은, 당연히 날 닮았겠지.
잠시 방전되었던 모성애도 충전되었다.
남편에게 둘째한테 뭐라도 하나 사주지 그랬냐고 했더니 자기는 편의점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고, 자기들끼리 너무 신났기 때문에 끼어들 수 없었다고.
다음 날 아침.
감동은 빨리 잊히고 짜증은 빨리 차오르는 법이다.
빨리 양말 신고 신발 신어!
빨리 어린이 집 가야지!!
하며 샤우팅하고 있는데 둘째녀석은 현관앞에 쭈그리고 앉아 밍기적대고 있었다.
깊은 심호흡과 함께 발성이 나가려던 순간,
"엄마 다 됐어!"
하며 일어나는 아들의 눈을 따라가보니
아이고 예쁜 것.
울 아들 참 섬세하구나.
예쁠 때 보다 안예쁠 때가 더 많지만 이런 과격한 감동 덕에 하루하루를 연명...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사랑의 묘약같은 스벅커피로 원기회복하고 앞으로 신발정리는 둘째에게 맡겨야겠다. 예기치 못한 기쁨이 송글송글 맺히는 가을....부터 겨울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