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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Oct 07. 2021

별일 없이 사는 삶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다

 별 일 없이 산다. 역병이 도는 중이라 시국자체가 별일이긴 하지만 역병에 적응해서 사는 지금 그리고 요즘은 별 일없이 산다. 양가 부모님도 안녕하시고 친지 형제들도 안녕들 하고 우리 부부도 아이들도 안녕한 중이다.


 별 일은 내 주식계좌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빠그러지는 계좌는 처음본다. 누가 내 지갑에서 1000원만 뺏어가도 경찰에 신고할 판에 주식계좌에서는 100만원 가까운 돈이 날아갔는데 이건 어디에 신고해야하나. 누가 도둑인가.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하니 내 돈을 내가 훔친건가. 내가 훔쳐서 어디에 쓴거지. 남편도 나도, 남편의 직장동료도 내 친구들도 주식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갖지도 팔지도 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보니 그냥 버티고 있는 중이다. 연말이나 연초에 갑자기 마(이너스)통(장) 갚으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 정도 하면서.




 별 일이 없다는 게 얼마나 팔자좋은 소리인가. 제발 별 일 없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쌓여 있었다.


10대 때는 그렇게 공부한다고 책상앞에 붙어있긴 했는데 어쩜 그리 성적이 안오르는지. 이 시험 지나면 저 시험, 저 시험끝나면 그 시험, 시험볼 때마다 막막한데 매번 느끼는 막막함은 참 새롭기도 했다.

 고등학교 떨어지고 대학교도 또 떨어지고. 새로운 고통속으로 늘 빨려 들어가면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새로운 고통을 익숙하게 넘길 수 있게 해준 친구들 덕분인 것 같다.


 그때 그 친구들 지금 다 어디가서 뭐하며 사는 지 모를 뿐 아니라 친구들 이름도 지금껏 연락하는 한 둘 빼고는 대부분 잊었는데 잘 살아있길 바란다.



 20대에도 많은 날들이 별 일이었다. 대학에 가니 학점도 관리해야하고 남친과 남사친들도 관리하고 싶었고 진로와 직장에 대한 고민과 운전면허를 언제 딸 것이냐도 중요한 이벤트였다.


 그래도 연애보다 힘든 별 일은 없었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면서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에는 늘 부지런했으며 하지만 익숙해지진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도 별 일, 회사 면접도 별 일, 소개팅과 연애도 별 일, 여행도 별 일.. 별 일 천지에서 살았구나.



(인생이 쉽지 않긴 했습죠  ⬇️ )



 30대가 되면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기 시작했고 나도 결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을 하면서 사는 모양이 어떻든 비로소 별 일없는 시기에 진입한 시점이었다. 별 일 없다고 해서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불과 결혼3년 만에 베이비푸어, 카푸어, 하우스푸어 3종세트를 달성했는데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0-20대에 시험이나 면접을 앞두고 느꼈던 압박이나 괴로움만큼은 아니었으니. 버금가긴 했지만.


 주변에 친구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인생을 만들어갔다. 특출한 한 둘이 자가로 시작하거나 강남에서 시작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너무 격차가 크면 질투고 열등감이고 없다. 긍정적인 의미로서 부러운거지. 갸들은 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고충마저 없었다면 부정적인 의미로도 부럽다.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서 생각했다.


 주변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거구나. 주변이 불행한데 내가 행복할 수 없구나. 설사 내가 행복하다 하더라도 나의 행복과 일상을 나눌 상대가 없다면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고립이겠지.


 별 일 없는 삶을 살면서 생각한다. 친구들도 별 일이 없나보다. 다행이다. 물론 자잘한 별 일들이 있긴 할 것이다. 나처럼 주식계좌가 빠그러졌거나, 아이가 7살인데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거나, 추석 때 뵙고 온 시어른의 말이 이명처럼 염불처럼 귓가에 맴돈다거나.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거나 괜찮아지지 않더라도 버티다보면 지금보단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죽을 때 까지 내 인생을 쥐고 흔들 줄 알았던 시험점수와 회사의 면접결과, 그 새끼들과의 이별이 지금은 기억도 생각도 안난다.


 나는 무던해진걸까 대범해진걸까 아니면 진짜 내 인생이 꿀팔자인걸까.


 서른 살이 되던 해의 봄. 친구를 만나려고 서래마을에 갔는데 서래마을의 그 아기자기하고도 고급진 빌라들 사이로 햇빛이 쫘악 비치는데 겨울을 이기고 나온 초록나뭇잎들도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을 타면서 살랑살랑. 그 풍경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들이 튀어 올라왔다.

 

 내가 다 알 수 없다. 내가 가진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 알 수 없다. 누가 알려준다고 해도 내가 다 알아듣거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몰라도 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살 수 없다. 모르고 살아도 된다.


 오- 그야말로 "은혜를 받았다", "불받았다" 라고 할 때의 기분이 이런건가 싶었다. 머릿속을 가득채웠던 원망섞인 질문들과 어디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답답함이 그냥 쑤욱 내려갔다.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때 느꼈던 그 뻥 뚫려 시원했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요즘도 가끔 모를 수 있다, 몰라도 된다 라고 생각하며 가끔씩 밀려오는 막막함에 대신 답하곤 한다. 막막함과 답답함이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와 달라진 내가, 오늘과 달라질 내일의 내가 어떻게 잘 해결하겠지 싶다.


 어렸던 날, 삶의 압박들을 무겁고도 괴롭게 이겨내며 버텨온 시간들이 지금에 와서 무거워도 무거운 줄 모르고 괴로워도 괴로운 줄 모르고 살 수 있는 담대함을 선물해 준건가 싶기도 하고, 아직도 철이 없어서 대충살고 있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저런 시간들을 거쳐 지금의 나는, 적어도 오늘의 난 별 일 없이 산다. 어제오늘 내리는 비에 빨래한 옷들이 안말라 오늘 저녁엔 빨래방에 가야하나 고민하면서, 다음주로 되어 있는 2차백신을 내일로 당겨 맞을까 하는 쓸데없거나 중대하지 않은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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