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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Oct 20. 2021

사실은, 자가격리중입니다

ㄴr는 ㄱr끔 고립을 원한ㄷr...;;;

 매주 금요일은 우리집 '미디어의 날' 이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잡아 태블릿pc로 영상을 보여준다. 아이들로선 얼마나 기다린 금요일이겠나! 눈에서 아주 레이저를 쏘며 영상을 보고 있었고 우리도 아이들 수발들던 일과에서 잠시 쉬며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멍때리거나 하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다. 금요일 밤 9시가 넘은 시간인데 왜?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사실 어린이집에서 오는 전화는 무슨 일일까 싶어 항상 놀란 톤으로 받게 된다.


-여보세요?

-네 어머님, 어린이집이에요

-네, 무슨 일 있어요?

-네.. 저기... 오늘 확진자가 나와서요.

-헉

-OO이 반 아이에요.

-네?

-네..

-아, 어제도 아이가 왔었나요?

-네 완전 날아다녔죠. 무증상이었어서 어머님도 억울해하세요.

-(아.. 억울한 건 억울한거고..나는 어쩌라고)

-어제 밤 부터 열이 나서 오늘 아침에 병원에 가는 길에 검사를 했나봐요. 저녁에 확진이라고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같은 반이라 밀접접촉자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내일은 진료소가 일찍 닫거든요. 아침에 꼭 검사하시고 결과를 알려주세요.

-네...

-저희도 조심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서 다음주는 문 닫아야 될거고요.

-네. 알겠습니다. 검사받고 결과 알려드릴께요


이게 머선129?

위기가 턱밑까지 찼구나 했는데 기어이 턱 위로 올라오고 말았다. 더군다나 그 어린이집엔 조카도 같이 다니고 있는데, 목요일은 내가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라 엄마가 조카랑 우리 애들까지 다 봐주시는데 하필..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올케에게 나는 동생에게 그렇게 연락을 하고 부랴부랴 둘째는 내가 첫째는 남편이 데리고 잤다.


 어린이집으로서도 참 난감한 일이다.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5년간 보내고 있는 어린이집이라 운영위원으로 참여해보니 어린이집은 권한은 없는데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하다보니, 게다가 국공립이라 시에서 알고 싶어하는 것도 많고 요구하는 것도 많다.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욕먹고. 원장님의 목소리에서 아주 심려와 고충이 베어나왔다.


 토요일은 10시 전에 일어난 적이.. 아이들 신생아일 때 말고는 없는데 8시부터 일어나서 선별진료소에 다녀왔고 우리는 자체적으로 격리하던 중 오후에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격리자가 아동이니 공동격리자 한 명을 더 지정하라고. 빼박 나. 담당공무원이 정해질 때 까지 대기하라고.



 지금같으면 왜 남편으로 밀어부치지 않았나 모르겠다. 으레 엄마가 해야하는 줄. 남편은 본투비 집돌이고 나는 본투비 역마살인데.


 일요일 아침 음성통보를 받고 첫째는 옆 단지 친정엄마 댁으로 보냈다. 어쨌든 등교는 시켜야 하는데(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이번주에 공개수업도 있고 체육의 날 까지 있었다. 등교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등교를 위해서는 지붕이 다른 집으로 분리하거나 2일에 한 번씩 코로나검사에 음성이 나와야 가능하다고 했다.

 2일에 한 번씩 코를 찌르는건 나도 너무 무서운 일이라 일단 거주지 분리를 결정. 엄마도 흔쾌히 이해해주셨다.


 폭풍같은 주말이었다. 원내에 추가감염자는 없었고 전원 음성이라고 했다. 아직 담당공무원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마지막으로 나가서 좀 뛰다올까 싶기도 했다. 말이 14일이지.. 14일이 얼마나 길고도 짧냐면.. 올림픽이 14일.. 하아.


 자가격리해제일에 빨갛게 동그라미를 치고 정신을 차리고 해야할 일들을 정리했다.

-직장에 알리기

-이용자들에게 알리기

-첫째 담임선생님께 알리기(등교가능확인)

-첫째 다니는 학원 선생님들께 알리기(등원가능확인)

-에버랜드 연간권 기간중지 요청(기간중지완료)

-다른 자가격리자들은 어떻게 사나 검색(격리보급물품을 받고 격리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


 이런 일들을 하며 이렇게저렇게 2-3일을 보냈다. 생각보다 아들은 집돌이 스타일이었는지 한글쓰기, 산수풀기, 종이접기 등을 하며 시간을 잘 보냈다. 삼시세끼 차려내고 치우는게 고되긴 했지만 저 일들 때문인지 생각보다 바빴다. 그 사이에 담당공무원이 정해졌고 보급품도 받았다.



격리자가 둘이다보니 먹을것은 똑같은 분량으로 한 박스 더 왔다


 자가격리관련된 어플도 깔아서 위치추적이 된다. 그야말로 아무데도 못가~



  4일째.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4인 가족이면 격리지원금이 얼마라고? 100만원쯤 된다고? 그럼 샤넬에서 제일 싼 거라도 살 수 있나? 격리해제 되자마자 떠날 수 있는 곳은 어디지? 주말치고 가격이 저렴한 숙소를 검색해보까?


 환기가 필수이기에 창문을 여닫고 있지만 혹시 몰라 현관문도 열 수 없는 이 몸은 답답하기 그지없고 하루에 한 끼 먹는데 그마저도 살이찌는 것 같아 짜증이...

 

스벅리유저블컵에 먹으니 스벅커피 아녀도 스벅커피느낌이네요ㅠㅋ


 

 검색해보니 격리기간동안 집에 있으면서 리프레시되었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런 과는 아닌가봐요. 뛰쳐나가고 싶네요. 그래도 초반엔 이불빨래도 하고 좀 큼직한 집안일들을 하느라 시간을 잘 보냈는데 아이와 둘이 있는거나 마찬가지이고 둘 다 같은 옷으로 이틀삼일 살다보니 빨래할 것도 안나오고 먹고 싸는 일, 그 와중에 씻는 일을 추가하고 책 읽기도 사이사이에 들이밀어본다.


 답답해하는 사이 해가지는 것이 신기하고 하루에 300보도 걸을 수 없는 날이지만 그럼에도 허기가 찾아오는 게 신기하다.


 가족 그리고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 말고는 알리지 않고 못 하고 그랬다. 이래저래해서 이렇게 됐다.. 는 설명은 이미 너무 많이 하기도 했고 누가 안부를 물어오면 모를까 괜히 내가 먼저 커밍아웃할 필요는 없지않나 싶고.


 스스로 고립되는 시간을, 그 시간속에 나는 무엇을 만들어내거나 무엇을 흘려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도 싶다. 일단은 해제 다음날 당장 갈 수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이것만으로도 목표를 얻은 기분이다. 아싸!



*

그래도 마스크필수 거리두기 하시고요

사람많은 실내에 오래 머물지 마시길요

으아아ㅏㅏㅏㅏㅏㅏ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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