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일주일을 넘겨가면서 나는 슬슬 맛이 가기 시작했고나의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숙소예약사이트에 가버리고 말았다.
자가격리해제일은 목요일
나의 마음은 물론 성격도 급하기 때문에 금토일에 예약가능한 숙소가 있다면 바로 결제할 태세였다. 평창으로 갈까 했다가 강원도쪽은 몇 번 가봤기 때문에 충청권이 낫겠다는 남편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보통 내 맘대로 하고 사는데 갑작스런 여행과 소비는, 나도 미쳐갈 일이긴 하지만 남편의 협조도 필요한 것이니 서로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결정한 곳은 충남 보령이었고, 목적은 호캉스가 전혀 아니었으므로 숙소의 컨디션보다는 '이번'주말 투숙가능여부가 제일, 아니 그것만이 유일하게 중요했다. 다행히 주말 2박에 28만원 선으로 나름대로는 선방했다는 마음으로 숙소비를 결제했다.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냅다 달렸고, 중간에 화성휴게소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은 후 다시 달려 3시간 만에 숙소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쾌적했고 괜찮았다.
사실 나나 남편이나 청결에 그렇게 예민한 편이 아니다. 비싼 호텔이면 모를까 그냥 우리집 수준이면 된다. 평소에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내다본 방뷰는 골프장이었다. 시원했다. 집안생활에 답답했었기 때문에 얼른 준비해서 아침부터 밖에서 먹기로 했다. 바깥공기는 맑았고 상쾌했고 집에서 아무리 스트레칭을 해도 찌뿌둥했던 몸은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칭이 되는 듯 했다.
물론 집에서도 베란다문 열어놓고 바깥공기를 마실 수는 있었다. 하지만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생각보다 곤란한 것이었다.
바다는 동해나 서해나 남해나 모두 멋지다. 나름의 특색이 있겠지만 어디가 더 좋고 어디는 별로고 하는건 없는 것 같다. 다 멋지고 광활하고 대단했다.
바다앞에서 계절이란 그저 이름에 불과한 아이들은 내가 여분의 옷만 챙겨갔다면 바로 물 속으로 뛰어들 기세였다. 머드축제로도 유명한 대천해수욕장의 모래는 정말 보드랍고 맨들맨들했다. 촉촉한 모래라 땅굴을 파고 놀기에 더 유리했다는 계절을 모르는 망아지의 말씀이 있으셨다.
춥다고 느끼는건 그저 지는 해를 보며 멍을 때려야 할 지 인생의 고독에 대해 명상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 어른의 것이었고, 아이들은 추위를 느낄 줄 모르는 지 별안간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다. 정말 아이들에게 계절이란 이름일 뿐인가. 아이들이 건강해서 감사하다.
메가히트관광지인 제주도나 강원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검색을 하면서도 어떻게 검색해야할 지 모르겠는 약간의 막막함이 들기도 했다. 물론 "보령 가볼만한 곳"이라고 치면 꽤 나오긴 하지만 무계획으로 이 곳에 와서 뭘 해야할지를 정하는 것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나는 계획이 철저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막연히 떠나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이번엔 계획이고 뭐시고 다 필요없았다. 그냥 집밖으로 멀리 나가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유명지이든 아니든 관광지골목이든 동네골목이든 모든 곳이 예쁘고 아름다워보였다. 모든 것은 정말 마음먹기 달린건가.
위 사진은 "학성리 공룡발자국화석발견지"이다. (저어기 큰 공룡 보이세요?)
공룡 세마리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에겐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물길이 열리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데 우리는 운이 좋게 물길 열려있을 때 와서 바다건너까지 가볼 수 있었는데, 발자국화석은 찾지 못했다. 찾으러 출동하기도 전에 우리집 망아지가 바닷속 탐험을 가셨기 때문에...
바다 근처라 수산시장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첫 날에는 랍스터를 먹었고 둘째날에는 굴찜을 먹었다.
킹크랩을 먹고 싶었는데 킹크랩은 아직 수율이 70%정도일거라며(10월말) 랍스터를 추천하셨다.
주먹만한 살들이 내 입으로 들어올때의 그 충만한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볶음밥까지 정말 맛있고 배부르게 잘 먹었다. 나는 먹기 시작하면 집중해서 먹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남편은 좀 모자랐다고 한다. 나보고 천천히 먹으라고 말을 하지, 좀 미안하진 않았다.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다.
생굴도 먹고 싶었지만 아직 날씨가 추워지지 않아서 비추라며 추천해주신 것이 굴찜. 아이들을 위해 가리비도 풍성하게 쪄주셨다. 동네에서 파는 굴전은 굴 몇개 들어가고 그냥 부침가루 부침개인데 여기는 빈틈없이 굴이 들어가있었다. 허허. 역시 맛있었다.
이번엔 좀 천천히 먹었다. 다행히 남편도 배부르다고 했다. 하지만 더 배부른 나는 바로 차에 타지 못하겠어서 좀 걸었다.
이번 여행은 둘째의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가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같은 반 아이들 모두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 14일을 견딘 기념(?)으로 간 여행이었다.
마스크착용에 대한 습관은 어른인 나보다도 더 착실하게 배어있는 아이들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지냈다. 나와 내 아이들이 조심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확진되었던 아이도 무증상이었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클 것이다. 다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천지다. 특별히 가꾸지도 돌보지도 않는 자연이 자연인 상태로 너무 멋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는 것 처럼.
자연의 위대함과 우리의 자가격리의 스케일은 매우 다르긴 하지만 답답한 짜증가운데 만난 자연은 아름답고 위대했다. 노력하며 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불편으로 쓰레기를 뱉어내며 버티는 것과 다르게 자연은 쓰레기를 견디며 인간의 이기심을 품으며 그렇게 위대하게 굳건히 '자연'이라는 이름을 지킨다.
이제 출발하자, 내일은 등교하고 출근해야지. 하며 고속도로를 찾아 달리다가 길가에서 발견한 너무 멋진 카페. VITZ이다. 신상카페인지 갈대와 핑크뮬리도 심겨있었고 해먹과 그네도 예쁘게 자리잡고 있었다. 차 안에서 카페를 먼저 발견한 아이들이 "엄마, 저기서 커피마셔야지!"할 정도로.
자연이 인간에게 내어준 자리. 우리가 땅의 모든 곳을 다 딛고 살 수 없다. 우리가 딛을 수 없는 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과 생명들이 살아있겠지. 우리의 입장에선 그곳이 '미지의 공간'이지만 그곳의 입장에선 그곳은 그들의 터전이다.
미지의 공간이 개발의 공간과 같은 뜻이 전혀 아닐텐데. 놀라운 생명과 생물이 있는 줄도 모른채 사람들은 영역을 늘리려고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고 딛을 수 있는 끝까지 가서 건물을 짓고 성을 쌓아올린다.
비수기에 떠난 우리는 사람보다는 한가한 자연을 더 많이 만났다. 이것이 비수기의 맛인가.비수기까지 자연을 들쑤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자가격리를 마치고 일상을 살고 있다. 출근을 시작했고 아이는 등원을 시작했다. 그 사이 위드코로나가 되었고 교회도 열렸다. 그 날 또 확진자가 발생하여 7살된 둘째는 세번째 코를 찔렀고 나는 여덟번째.
이것도 일상이려니 해야하는건가.
코로나에도 비수기가 오면 좋겠다. 확진자3000명 시절이라니. 기사를 읽으면서도 읽혀지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