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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ul 16. 2020

외출의 레슨

어느 모성애 돋던 날의 에세이

 남편이 일주일 해외출장을 통보했다. 아이들이 6살, 4살이라 아직 손이 많이 가는데 출장이라니. 하루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씩이나. 일주일 독박육아에 던져진 나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 혼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친정부모님은 가까이 살고 계셔서 부탁드리는 마음이 조금 덜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나는 이틀간 반차를 냈었는데, 친정엄마가 아이들 하원시켜 집에서 데리고 있을 테니 전시나 영화나 보고 싶었던거 있으면 다녀오라고 하셨다.


 “엄마가 애들 둘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텔레비전 좀 보여줘도 되지? 텔레비전 보여주다가 밥먹이고, 해도 길어졌으니 천천히 동네 한바퀴 돌다 오지 뭐.”

 “고마워, 엄마. 그럼 부탁좀 할게.”


 딱히 보고싶은 전시나 영화가 있었던건 아니었지만, 정확히 말해 볼 만한게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일단은 나가고 볼 일이었다. 가면서 검색하면 되니까. 아이 낳고 나 홀로 저녁 외출이라니 이건 정말 대박사건!


 이른 퇴근 후 미술관으로 갔다. 오랜만에 전시관람이라 들떴고 설렜다. 그만큼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나를 찾거나 괜한 투정을 부려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나 없을 때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 온 것이 있나 확인했다.

 환청처럼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주머니에 넣어 놓은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져 자꾸 놀라기도 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정신이 반은 아이들에게 가 있어서 순간순간 설명을 놓치기도 했지만 아이들과는 누리기 어려운 호사이기에 혼자 있는 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전시장을 나서며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엄마께 전화를 했다. 아이들은 나 안 찾고 잘 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신다. 그래도 어미된 마음에 첫째를 바꿔 달라고 했더니 전화받기가 무섭게


 “엄마 나 바빠. 시크릿쥬쥬봐야돼. 재밌게 놀다 천천히 들어와. 안녕.”



내가 지금 뭘 들은거지.

잠시 놀랐지만 깊이 놀랐다.

바쁘다니, 천천히 들어오라니. 텔레비전이 그렇게 좋은가.

내가 외출 후 서너시간 동안 신경쓰고 걱정한건 어떻게 되는 거지.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하지.

잠시 띵했던 것 같다.

부리나케 집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카페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 들어가기로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편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와중에 종종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와 책을 덮고 엄마가 보내준 아이들의 노는 사진과 영상을 보았다.


 신기했다.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혼자만의 외출은 남편이 허락해준 두 세 시간정도의 커피 타임이 전부.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마을버스라도 타고 번화가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갓난 아기가 아니니 일이 일어나봤자 별일 아닐 텐데 너무 걱정에 갇혀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내가 모성애가 넘치는 엄마도 아닌데.



 

밤공기가 상쾌했다. 가을은 아름답고 시원했다. 사계절을 몇 번 거치는 동안 아이들도 많이 자랐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을 이루는 동안 나는 아이가 내 품에 안겨있던 그때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나보다. 그렇게 바랐던 아이들의 성장인데, 막상 아이들이 쑥 자라서 날 찾지 않으니 섭섭하고 서운했다. 너무 좋은데 조금 언짢고 너무 편한데 조금 외롭기도 했던 나의 저녁외출.

어느 새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여전히 그대로인 내 모습을 후회하지 않기를.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라기를.

오늘은 아이들 생각 말고 내 생각을 좀 하다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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