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치고 나가야 합니다.
“분가는 무슨 분가란 말이고? 방주 지어야칸다 안했나?”
“아버지, 따로 살아도 방주짓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같이 시작하고 같이 끝내야 하는기다.”
“그건 너무 효율적이지 않아요. 사실 전문가를 모셔서 일을 하는게 몸뚱이 뿐인 이이보다 낫죠. 안 그러세요 아버님?”
“뭔 소리고. 이건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신 과업이다. 무신 전문가를 찾노?”
“그 음성 이 이도 들었나요? 아버님만 들으신거 아니에요?”
“내가 들었으면 우리 가족이 들은 기야. 내가 이 집 대표아이가. 나한테 말씀하신게 우리 가족한테 다 말씀하신 기다. 알아듣나?”
“그건 저 결혼하기 전의 일이잖아요. 이제껏 저는 방주짓는 일에 망치질 한번 못해봤는데 그 음성이 저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니도 내일부터 산에 올라가자고마.”
“아버님, 저도 방주짓는거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이가 그 일에 동참할 수 있어서 좋고요. 근데 전 해왔던 일이 있잖아요. 이만큼 부엌데기면 제 할 도리는 다 한 거 같아요.”
“아버지. 이 사람 노래하는 사람이잖아요. 지금이 목상태도 제일 좋을 때고 건강할 때인데 이렇게 부엌에만 있는 게 안타까워요. 방주 짓는데 전문가 부르는게 안되면 부엌일은 아주머니 쓸 수 있잖아요. 분가한다고 제가 일 안하겠다는게 아니고요.”
“같이 살면서는 노래 몬하나?”
“아버지. 다 부엌에서 일하시고 하는데 혼자 방에서 연습하고 나가서 가르치고 할 수 있겠어요?”
“크흠...”
험난한 과정이었다. 아버님이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로 며칠을 끄시다가 어머님이 잠시 안 계실 때 작은 형님이 식사를 올려드리지 않는 일이 있었고, 그 다음 날 편지를 남겨두고 작은 형님이 먼저 짐을 싸서 나가셨다. 그 날 저녁에 아버님은 우리 결혼식 이후에 작은 형님네가 분가하는걸 허락하셨다.
나는 부모님과 사는 동안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시집 안 가냐며 하도 쪼아대서 빨리 결혼해서 본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자 혼자 나가 사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보수적인 아빠 때문에 독립도 못하고 그저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다가 적절한 시기에 운명처럼 남편을 만났다. 순조롭게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좀 억울하지만 그 때는 운명이고 은혜라고 생각하며 막 감격스러워하던 때가 생각난다. 참 철없었다.
결혼할 때 남편은 당분간 경력단절이 되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웬 경력단절? 조금 낯설었다. 결혼하니까 일을 관둬야지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전투적인 마음도 사실 별로 없었다. 그저 결혼 자체에만 신경썼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이직도 하지 않고 한 직장에서만 계속 일해왔다.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쉴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작은 쉼표를 만들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남편은 아버님이 지으시는 방주가 완성될 때까지는 합가해서 집안일을 도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일단 결혼을 통해 스트레스 충만한 본가에서 탈출한다는 사실에 너무 기쁜 나머지 집안일이 지금보다 더 험한 일이었다고 해도 일단 오케이 했을 것이다. 막상 닥쳐보니 그렇게 쉽게 오케이 할 일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남편이 센스있게 도와주기도 했고, 작은 형님이 선방을 날려주신 공로덕분에 식사를 챙기는 것 외에 다른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쓸 일이 없었다. 물론 식사가 제일 큰 일이긴 했다.
우리의 결혼과 작은 형님네의 분가가 맞물려 작은 형님네와 단절된 느낌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작은 형님의 인생이나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으니 친분은 천천히 쌓아도 될 것이고. 사실 시댁식구와의 친분은 굳이 노력해서 쌓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 먼저 결혼한 언니들의 조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