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입주! 분양입주아님.
배에 오르기 며칠 전부터 집안 분위기가 아주 살얼음판이다. 굳이 이 고생을 해서 구원받느니 그냥 확... 아니다. 구원은 좋은 것이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옷이며 세간살이들이며 챙길게 많아도 너무 많은데 아버님은 어디서 자꾸 동물들을 몰고 오신다. 제사라도 지내시려나 했는데 맙소사, 저것들을 다 데리고 배에 탄단다. 걷는 동물들만이 아니었다. 새들도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육 십년을 산을 오르내렸지만 천막에 가려져 있어 채 알 수 없었던 방주의 크기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눈에 다 담기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걷는 동물 이천 마리, 새 육천 마리랑 같이 들어가야 한다. 날씨가 이렇게 쾌청한데. 비 안 맞겠다고 그 안에 들어가서 동물들이랑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시간동안 살아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구. 이게 머선129.
열흘에 걸쳐 세간살이들, 먹을 것들을 실었고 걷는 동물과 새들까지 모두 배에 태웠다. 그 엄청난 규모가 감탄스러운게 아니라 개탄스러웠다. 정말 아버님은 내 심금을 웃기신다. 방주 안은 동물원인지 인간원인지 분간이 안된다. 사람 수보다 동물 수가 훨씬 많으니 오히려 우리가 동물들의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았다.
아니다. 우리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동물들의 섭식도우미, 청소도우미였다. 사람은 배고픈 걸 참아도 동물들은 참지 못한다. 백 년 동안 산 위로 음식을 날랐던 스킬로 동물들의 삼 시 세 끼를 다 준비해서 갖다 바쳐야 했으며, 머리 위에서 새똥은 쉴새 없이 떨어졌고 기린의 오줌도 만만치 않았다. 새똥과 기린의 오줌을 비로 착각할 정도였다.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이 필요한게 아니라 새똥과 기린오줌을 피하기 위해 우산이 필요한 것이었다. 방주 안에서는.
조카들은 동물원이 따로 없으니 신나서 뛰어 다니며 놀다가 기린 뒷발에 차이고 말꼬리에 맞아 다치는 일들이 늘상이었다. 이제 새똥 맞는 일은 쳐주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새똥 말똥 기린똥에 미끄러져서 하도 다치고 난리인데 약도 없고, 방주 안에서 신기하고 신난다고 뛰어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답답하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달래주는 것 역시 하루 이틀이지 나도 답답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도대체 시간이 얼만큼 흘렀을까. 시간이 흐르기나 하는 걸까. 온다던 비는 오지 않고 있다. 우리는 방주 안에 갇혀 또 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될 것만 같다. 아, 아버님 진짜 완전 피곤한 스타일. 내일까지 비가 안 오면 탈출하려고 탈출 성공을 위한 금식기도까지 하고 잤다.
다음 날 거짓말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동네 웃음거리는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했지만, 이 습기 어떡하지. 비 때문에 생긴 습기에 동물 냄새에 도무지 마르지 않는 빨래들까지. 홍수 때문에 지은 방주이니 홍수가 나서 다행이지만 홍수가 난 와중에 우리는 살아 보겠다고 이렇게 습한 방주 안에서 동물들 똥오줌냄새 맡아가며 살아남는 게 축복인가 싶다.
홍수가 언제 끝날지, 감옥 같은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잖아.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탈출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비가 오니 탈출의 희망도 없어졌다.
아버님은 사 십일 후면 비가 그칠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해가 뜨고 지는 걸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으니 지금 며칠이 지났고 며칠이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답답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그저 배꼽시계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일을 세 번 반복하고 주위가 조용하고 졸리면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일정한 간격대로 밥 먹는 일을 세 번 반복하고 조용하고 졸리면 자고. 이렇게 본능적으로 살아갔다.
그 와중에 동물들은 자기들끼리 눈이 맞아 새끼를 낳기도 했다. 전쟁통에도 사랑이 꽃 피고 아이를 낳는다더니 홍수재난에도 아이를 낳는다. 우리 작은 형님 얘기다. 이 와중에 임신을 하시다니. 정말 대박사건이다. 이게 또 머선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