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려고 굳이 그 고생을 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가끔씩 출렁이던 방주도 한동안 동요 없이 어디엔가 정박해있는 것 같았다. 배는 멈춰 있었지만 배 안은 여전히 난리통이었다. 냄새와 똥과 털의 전쟁이었다. 푸드덕푸드덕 날아다니는 새들 때문에 하루에 다섯 번씩 새들이 흘리는 깃털을 치워도 여전히 깃털은 수북히 쌓여있었고, 환기도 할 수가 없으니 정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은혜라면 똥과 방구냄새가 가득했던 배 안에서 우리가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게 하신 것일 테다.
그러던 어느 날 배의 창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보니 산봉우리 같은게 보였다.
“아버님, 여기 좀 와보세요.”
“뭐꼬?”
“비가 그쳤어요. 저거 산봉우리같은데요?”
“맞다. 맞네. 그래. 하나님이 우리 지키신다안했나.”
아버님이 새를 한 마리씩 며칠 간격을 두고 배 밖으로 날려 보내셨다.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 비둘기가 돌아오는걸 보니 아직 새들이 둥지를 틀 만한 곳은 없나보다. 우리는 배 안에 며칠 더 머물렀다. 이제 이 생활의 끝이 오고있는 건가. 얼마나 지났을까.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 보냈더니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님이 방주 뚜껑을 여시고 밖을 내다보셨다. 아직 육지가 다 드러난 것은 아니라서 우리가 다 내릴 순 없었지만 새들은 다 밖으로 날려 보내주었다. 새들이라도 제 살 길을 찾아 떠나가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이제 새똥과 짹짹거리는 소리, 새털들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 육 천 마리가 함께 배에 탔지만 만 마리가 넘게 밖으로 나갔다. 새들의 엄청난 번식력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우리 작은형님께도.
방주에서 며칠을 더 보내고 드디어 마른 땅이 보여 우리는 배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동물들은 알아서 제각기 자기의 길을 찾아갔다. 청소도우미이자 섭식도우미였던 우리에게 인사하나 눈짓하나 없이 떠나 버렸다. 잘가라. 나도 미련없다.
배 밖으로 나와서 만난 풍경은 아득하면서도 선명했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평원과 야트막한 동산들, 거기에 닿아있는 하늘이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낯설고도 반가웠다. 비가 말끔히 갠 후에 오는 상쾌함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씻겨주는 것 같았다. 코에서 머리까지 시원하게 뚫린 기분이다.
이 기분 너무 좋다. 숨쉴때마다 청량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비가 내리쳤을 텐데도 무거운 비를 이겨내고 초록들이 올라왔다. 자연의 신비란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경이롭다.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감성적일 수 있는 시간은.
온 세상에 동물들 빼고는 자연과 우리 가족밖에 없다.
다 없어졌다. 집을 지어줄 목수아저씨도, 우리에게 빵과 떡을 주시던 방앗간 아줌마도, 뭐 입고 살아야 하나 양장점 사모님도 다 안 계시다.
아무도 없다. 여기는 우리가 살았던 동네도 아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백 년동안 산꼭대기를 오르내리며 방주를 지어 동물들을 태워 사 십일 넘게 내린 빗속에서 항해 아닌 항해를 하다가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기를 오 개월 넘게 기다린 후 내 발로 밟은 땅의 인사는 반가움의 인사가 아니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나 구원의 기쁨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이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아버님의 분부를 기다려야했다. 분부하시기 전에 묻고 싶었다. 뭐 부터 시작해야할지.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시작이나 할 수 있을지. 살아있는 건 과연 축복인지. 지금 이 상황이 구원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용기가 없다. 난 이 집 아들도 아니고 며느리다. 게다가 막내 셋째 며느리.
“와 봐봐라! 아들! 거기 제단쌓을거 가져오래이!!”
제단이라니, 제사를 지내실 모양인가보다.
“네!”
아주버님들과 남편이 다같이 배로 다시 뛰어가서 제단과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왔다. 언제 저것들을 다 실어놓으셨는지 모르겠다. 큰 형님 말씀으로는 제일 넓은 공간을 아버님이 알아서 하시겠다며 비밀스럽게 무언가를 하셨다는데, 그 안에 제사물건들을 다 모셔 놓으셨나보다. 아버님 참 치밀하시다.
아버님은 제단을 쌓고 우리와 같이 배에 타고 있던 동물들 몇 쌍을 데리고 와서 동물들을 태우는 번제를 드렸다. 막막했던 몇 개월을 보낸 후의 제사라니. 조금 감격적이기도 했고,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가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