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마는
그런 포지션으로 육십 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어느 해 2월 어느 날이 되자 아버님은 배를 다 만들었다며 슬슬 입주준비를 하자고 하셨다.
“빨리 탈 준비 하래이. 선착순이라 안하나!”
“아.. 아버님 몸만 들어갈 수 있나요. 먹을 거랑 옷이랑 뭐 세간살이들은 누가 대신 실어준답니까?”
“여태 안하고 뭐했는가? 서두르라 안합디여..아 참말로..”
“당신이나 들어가! 당신이나 구원받고 잘 살어!”
“아유 어머님. 이제 살 일만 남았는데 조금만 참으셔요.”
“하이고. 너는 참아지냐 이게? 하이고..내가 사돈댁들 뵐 면목이 없어. 늘 죄송하다고 전해라. 에휴 내가 정말.. 그래도 니들 남편이 느 시애비보단 낫잖여? 그걸로 위안삼아라.”
“어머님도 참.. 짐들 다 저희가 챙길게요. 먼저 들어가셔서 쉬셔요.”
“뭐라 씨부리쌓노. 비 맞고 심판받을 판에 댁 귀한 딸들 다 살려주구마.”
“아이고 아버님. 저도 요 며칠 식사들고 산꼭대기 안가니 좀 살겠네요.”
“흐흠..그래..뭐 수고한 거 안데이.. 그건 그거고... 니도 마 고맙다고 마 꼬꾸라지게 인사할 날이 올끼구마. 내 음성들었다 안하나.”
“저 이는.. 음성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우 어머님. 저랑 들어가셔요.”
웬일로 작은 형님이 나서셨다.
남편말로는 아버님의 방주프로젝트에 큰 브레이크를 몇 번 거신 분이 작은 형님이란다. 사실 내가 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 일주일도 안되서 분가를 하셨기 때문에 작은 형님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들은 게 대부분이고 어머님이나 큰형님이랑 얘기하다가 간혹 작은형님의 이야기가 나오면 작은 형님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뿐 나랑은 인사 말고는 직접 대화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인사를 나눌 때의 그 눈빛이나 분위기는 분명 브레이크를 걸고도 남을 만한 아우라였다.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산에서 점심상을 가지고 내려온 남편에게
“도련님, 도련님은 제가 왜 형이랑 결혼했다고 생각해요?”
“네?”
“도련님도 여자친구 있죠? 여자친구가 결혼해서 이렇게 방주짓는 시아버지 때문에 하루종일 부엌데기로만 있으면 좋겠어요?”
“아닙니다.”
“형님은 원래 인테리어하던 분이고 여기 삼형제는 계속 이 일을 해왔으니 아버님이랑 일하는 게 맞을 수도 있지만, 전 아니잖아요. 노래하는 사람이잖아요, 전. 제가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해요. 그래서요, 오늘 저녁에 그 이랑 아버님께 가서 말씀드리기로 했거든요.”
“무슨 말씀 말입니까?”
“분가 얘기요.”
“네? 분가요? 오늘 말입니까?”
“네. 그럴려고요. 형이 얘기 안 해요?”
“형이 나가서 살고 싶다고는 얘기했었죠. 근데 분가는 저희 삼형제 다 원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네.”
“다 원하는 일인데 왜 시도를 안해요?”
“아시지 않습니까. 아버지 성격.”
“아니까 부딪쳐야 하는거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방주짓는 것도 그렇고. 그거 아녀도 엄마 혼자 아버지 감당할거 생각하면..”
“어머님 혼자 감당할게 안타까워서 우릴 인질로 삼고 있는 거에요? 도련님?”
“아니요. 아닙니다. 형수님. 저희 다 독립할 계획을 세웠었는데 아버지가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겁니다. 방주를 지어야 한다고 하셔서 그 일 다 끝나면 독립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건 삼형제만 있을 때 얘기잖아요. 다들 결혼하기 전이죠?”
“큰 형님은 혼담이 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형수님은...”
“네 알아요. 독립할 필요 없는거. 근데 나는 독립해야 해요. 난 지금이 목 상태도 제일 좋고 건강할 나이라고요. 여기서 밥하고 올려 드리고 설거지하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요. 부탁 좀 할게요. 오늘 아버님이 들어오셔서 빨리 주무시지 않게 적당히 시간 좀 끌어주세요. 도련님, 내가 이렇게 치고 나가야 도련님도 결혼 후가 편하지 않겠어요?”
“네.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당시의 작은 형님은 오래 준비해온 비장의 무기가 있는 듯 결의에 차 있는 와중에 여유까지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남편도 작은 형님의 분가프로젝트를 알고 있었다. 작은 아주버님은 우유부단한 성격이긴 하지만 꼭 해야 할 말만 하시는 분이라서 남편에게 분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땐 부부의 결정도 끝났고 아버님께 말씀드릴 결심도 섰을 때였다. 결심을 했더라도 작은 형님네의 분가에 이르는 길은 당연히 녹록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