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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ul 31. 2020

내 장례식을 위한 영상편지

언제 올지 모르지만 꼭 오고 말 그 날을 생각하며

                                                                                 

얼마 전, 가까운 친척 분의 상이 있었다. 가까운 분이니 장례식에 꼭 가야 하는데 시절이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었다. 아이들을 맡길 데도 없고, 부모님은 장례식장에 상주하다시피 하시는 중이셨고, 나 혼자만 가자니 그것도 좀 그렇고 해서 늦은 밤에 다 같이 갔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조문객보다 더 많은 장례식 화환,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린 채 눈빛과 눈물로 대신하는 인사가 안타까웠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척분이 우리 아이들을 보고 여기 있는 동안 처음 보는 아이들이라고 하셨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성대할 수 있는 내 결혼식이나 내 부모님의 어떤 잔치보다 나의 흔적들밖에 남지 않을 장례식이 더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언제 갈지 모르지만 갈 만해서 가는 하늘나라일 텐데, 가는 나는 기뻐도 보내는 사람들은 슬프겠지(그...그렇...겠지...?). 그 날을 한 번 생각해본다. 내 장례식이 축제일 수는 없겠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날이기 바라면서. 되도록이면 내가 덜 늙고 죽음의 그림자가 크게 드리우지 않았을 때, 이대로 영상 편지를 남겨 보겠다.






다들 공사다망할 텐데, 변변치 못한 자의 가는 길 배웅해주러 와 준 친구들, 아는 님들 모두 고맙고 감사하네.

슬퍼하지 마. 난 천국행 급행열차를 타고 달리는 중이라고. 어차피 곧 만날 인연들 아닌가!


다들 밥 먹으며 이 영상보고 있는가?

행여나 매운 육개장 못 먹는 아이들 있을까 하여 싱거운 오뎅국도 만들어 놓으라고 했네. 아이들은 꼭 오뎅국 먹이도록 하게나.


이런 얘기 민망하지만 봉투도 좀 챙겨 왔는가. 봉투와 방명록에 꼭 이름 적고 가게. 그래야 내 아이들이 다 기억해뒀다 받은 은혜를 갚을 걸세.

마음 같아선 봉투며 화환이며 정중히 사양하고 싶지만, 내 남은 가족들이 날 보내고 감당해야 할 어느 정도의 슬픔과 삶의 무게에 그대들의 정성이 큰 힘이 될 걸세. 민망해하지 말고 두둑히 챙겨주고 봉투에 꼭 이름 써놓고 가게. 굳이 액수 확인하라고 하지 않겠네. 확인할 수밖에 없겠지만. 주차 등록도 잊지 말고.


기억해 주게나. 그대들 지금 내가 쏘는 밥 먹고 있는 것이라네.

내 사는 동안 늘 베풀고 나누며 살려고 노력했지만 내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누리고 싶은 거 포기하는 게 제일 어렵더군. 내 가는 길 배웅하러 와준 자네들에게 마지막 베푸는 게 고작 육개장과 몇 가지 반찬들뿐이라니. 미안하구먼.


장례식장 들어오는 길에 숫자적힌 조문 예배 주보 받았나?

예배 끝나고 상주가 행운권 추첨할 걸세. 부디 신앙이 다르더라도 예배드리고 행운권 추첨까지 하고 가게. 선물들은 다 내가 고르고 포장도 내가 했네. 느낌이 오던 날부터 오늘을 생각하며 차근차근 준비한 것이네.


입관예배, 발인예배 끝나고도 행운권 추첨이 있으니 내 절친들이여, 3번의 예배에 다 참석해주면 안 되겠나.

아무래도 경조사엔 사람들이 많아야 좋은 게 아니겠나.

자네들 천국에 오면 내가 뛰어나가 마중하겠네.


와준 나의 친구들 모두들,

밥들 먹고 잘 쉬다 가게.

날씨 좋을 봄이나 가을에 가면 덜 미안하겠네.

여름이면 더운데 고생시켜 미안하고 겨울이면 추운데 고생시켜 미안하네.


아무쪼록, 미안하고 고맙네.


그리고


사랑하네 모두들.





브런치도 네이버도 오래오래 남아서 나의 흔적과 발자국이 되어 주길. 그리울 때 몰래 와서 보다 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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