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 아들이 아닌 아들을 키우는 슬픔과 위로

메시아라고 믿고 키우는 일, 그리고 보내는 일

by 김호정

여느 아기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역시 모유를 먹고 자고, 울고, 싸며 자랐습니다. 메시아라고 딱히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구석이 없이 너무 평범해서 너무 신기했고 그래서 이상했습니다. 메시아라며. 설마 하나님의 천사라고 하는 이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예수가 세 살 즈음 되자, 말이 트이고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다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르친 적이 없는데 알아서 깨우치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느끼는 수준으로 배운달까요.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게 크는 건데 제 아들이라고 제 눈에만 특출나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자녀는 예수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특별했는지도요.


저는 건강한 남잡니다. 다소 험한 목수 일을 가뿐하게 해낼 만큼 저는 건강합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 사는 동안, 예수가 죽고 다시 사는 일이 있기 까지 사실은 그 후에도 우리 부부는 많은 소문과 오해를 참고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제가요.


참고 견디는 세월을 사는 동안 우리 부부에게 힘이 되었던 건 당연히 우리의 아들 예수였습니다.


우리 가족이 동네 사람들의 수다꺼리가 되어 제가 도마 위에서 잘근잘근 썰려진 것만 같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던 날, 다녀오셨냐며 고생많으셨다고 맨발로 나와 저와 저의 어그러진 짐들을 대신 옮겨 주고 제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며 아직은 어렸던 예수가 저를 보며 지었던 미소의 인사를 기억합니다. 저에게 있었던 일과 제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가끔 마음의 산란함 때문에 일을 나가는 것이 버거울 때는 예수가 동행해주기도 했습니다. 예수로 인해 참아야 할 일이 생겼던 것인데 또 예수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와 함께 다니며 제게 배워서 혹은 눈치껏 터득한 기술로 할당받은 일을 꼼꼼하게 잘 해주었습니다. 그런 예수에게 고맙고, 그런 아들이 있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예수가 있는 자리나 머물던 곳은 대게 그랬습니다. 따뜻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저도 모르게 평안과 감사를 느끼며 무언가 모를 위로를 얻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저의 아이지만 저의 아이가 아닌 이 아이는 청년이 되자 오히려 제가 배우고 싶은 성숙하고 멋진 어른으로 변해갔습니다. 마리아는 닮았지만 저를 닮지 않아 더 멋져 보이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섭섭하기도 했지만 감사했습니다. 점점 더 메시아로서 완전해지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여전히 철없는 동네 아저씨들이 네 아버지가 누군지 아냐, 너는 누구를 닮았냐며 예수를 향해 더 철없는 질문을 던져도 예수는 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냐며 여유 있게 웃어 넘겼습니다. 저에게는 화살이 되었던 동네 사람들의 질문이 그에게는 그저 불어오는 바람 정도였나 봅니다. 그에겐 유쾌함이 있었고 깊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가 완연한 청년이 되어갈수록 저와 마리아는 예수를 보낼 때가 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집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도 역시 자연스럽게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 부부만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때가 되어 아들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실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저와 마리아, 그리고 우리의 조상이 기다린 메시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