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아이가 아닌 아이의 탄생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그 날

by 김호정

장모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마리아는 저와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장인 장모님도 허락하셨고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하는 편이 좋겠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게도 바랐던 마리아와의 한 집 생활입니다. 비록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긴 했지만요. 그런데 웬일로 마리아와 함께 지내는 모든 생활이 평화롭고 안정적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제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만큼 정욕이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와 더 가까이에서 지내보니 저는 이전보다 마리아를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우리는 하나가 될 운명이니까요.

계기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이 감사했습니다. 같이 있는 동안 대화도 더 많이 하고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행히도 장모님이 안정을 찾으셔서 마리아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 몇 개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올리브나무가 만개 끝에 열매를 맺는 때가 되자 마리아의 배는 눈에 띄게 불러왔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뱃속의 아이지만 저는 순간순간 이런 것이 부성애인가 싶은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아이 때문에 우리의 결혼이 미뤄진 것이니 그에 대한 원망도 있었습니다.


사실 정욕보다 원망이 저를 더 괴롭혔습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만약 그 아들이 제 아들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라면. 그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요. 상상도 하기 싫지만 자꾸 상상이 되덥니다. 가끔 마리아와 제가 함께 동네를 지날 때 아래 위로 훑어보고 수군대며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볼 때면 이게 정말 잘한 결정인가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아이가 궁금하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원망보다는 기대감으로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힘든 노력이었습니다. 여전히 양아치 같은 동네 놈들은 니 애 아닌데 어쩔 거냐, 니가 대신 키울 거냐, 메시아가 하늘에서 내려오지 어떻게 마리아 몸에서 나오냐, 말이 되냐,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라며 온갖 오지랖을 떨었습니다. 제가 인내심이 있어서 참은 것이 아닙니다. 저의 별명이 ‘의로운 사람’이라서 참은 겁니다.


참아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저는 울창한 올리브나무숲을 보며, 숲이 보내주는 바람을 맞으며 숨을 다시 고르곤 했습니다. 바람과 나뭇잎들이 만나며 내는 소리가, 바람이 나에게 와주는 소리가 ‘괜찮아, 잘했어,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제게 착한 마음을 선물해주려 했나 봅니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힘든건 마찬가지이긴 했지만요.



마리아의 배가 부쩍 불러왔고 장모님도 조금씩 초조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산달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그렇게.

저와 마리아는 예수를 낳았습니다.

추웠던 겨울, 옆 동네 마구간에서요.


천사에게 전해들은 대로 아들이 맞았고, 저희는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