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남)동생이 아기를 낳았고 올해 올케의 복직이 시작되면서 동생이 우리 동네, 그러니까 나와 친정엄마가 사는 동네로 이사 왔다. 우리 엄마는 본인이 직업여성(?)으로 살지 않은 것에 한이 맺혀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직업여성으로 살게 하기 위해 우리 애들을 키워주셨고, 우리 집 살림도 반은 해주시고 계신데 직업여성의 반열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할 여성이 한 명 또 생긴 거다.
바로 올케.
올케 입장에서는 올케의 시댁에 아기를 맡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직접적으로 묻진 않아도 '친정은?' 하는 눈빛이더라. 애 맡기는 입장에선 친정이 편한데, 친정엔 친정언니의 아이 둘이 이미 포진해 계시다고 한다. 우리 애들보다 어린아이 둘이니 거기에 신생아 하나 더 붙이는 건, 내 입장에서도 안돼요 안돼.
내가 매일 출근하는 건 아니니까 오프날은 내가 애들 보고 출근하는 날 엄마가 조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 계시는 걸로 합의를 보았고, 도무지 내가 퇴근 시간을 당길 수 없는 날은 우리 아빠가 둘째의 하원을 맡아주시기로 했다. 드디어 아빠까지 등장!
우리집에 애가 셋이라니.아무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감이 안 오는 거라.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카를 맞았다. 신생아가 있다는 건, 설령 봐주시는 이모님 세 분을 모신다고 해도 난리가 날 것이다. 잡고 있는데도 넘어지고, 보고 있는데도 엎어지고. 자지 않으면 난리. 우리가 그동안 사람 사는 집 같은 곳에 살고, 사람 먹는 음식을 먹고 산 것은 엄마의 공이 컸다.
엄마가 오시지 않는 날은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어떻게든 소비해야 하니까 고구마라떼 파는 카페에 가서 잠시 시간을 가졌다. 돈을 써야 교통정리가 되는 아이들이었다.
다른 날은 모래와 씽씽카와 함께 놀게 해 주었다. 남편 데리러 갈 시간이 다 되어 가자고 했더니 아빠 데리러 못 간다고 카톡 보내란다. 워낙 애들이 이 동네를 잘 알게 되다 보니 어디로 가면 뭐가 있는지 다 알아서 놀면서도 다른 놀 계획을 다 세우고 있었다.
애들이 어리면 어린 대로 뭘 몰라서 힘들고, 크면 큰대로 뭘 알아서 힘들고, 그렇게 영어나 수학을 알면 좋을 텐데 꼭 그 머리는 그 머리가 아니더라. 이 날 진짜 8시까지 놀다가 오죽하면 남편이 퇴근하고 여기로 왔다. 징허다.
내 나이가 사십인데, 사실 사십인 사람에게 나라에서, 세상에서 기대하는 어떤 모습은 없(을 것이)다. 나도 사십 인 사람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없다. 사실 그 사람 나이가 사십이든 아니든, 팔십이든 아니든 도덕적 윤리적으로 세상에 폐 안 끼치고 사람답게 살면 되는 거겠지(그게 어려우니 세상에 사달이 끊이질 않고). 근데 내가 사십인데 혼자 애들도 못 보고, 김장도 못 하고, 청소도 못 하는 게 좀 웃기고 처량 맞다. 그렇다고 돈을 그렇게 잘 버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오죽하면 고용지원금이 내 월급보다 많더라고. 일은 왜 하나 싶었다. 왜 사냐고 묻거든 그러게요 라고 전해주......
작년 5월경, 잠시나마 독립을 꿈꾸며 서울이든 용인이든 이사 가려고 했던 내 자신이 웃긴다. 아주 심금을 웃긴다. 짜증 나고 심술 나도(친정엄마한테도 이럴 때 있잖아요?) 엄마 옆에 붙어서 최소한의 사람인척 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