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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Sep 02. 2020

소수자였던 날이 있었다

늘 대세에 따라 살던 나.

2020년 2월 즈음 써놓은 글입니다


구정이 다가오던 주말에 모임이 있었다. 내가 싱글일 때부터 비슷한 관심사로 몇 차례 모임을 가졌던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오랜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속적으로 모임이 있었는데 내가 몰랐을 수도 있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로 직장이나 마트같이 생존을 위한 장소가 아니면 외출할 일이 없었다. 아니,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외출할 일을 만들 수야 있지만 나갈 엄두를 낼 수 없는 시간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가 없어도 잘 놀고, 잘 먹고, 최근에는 심지어 내가 재우지 않아도 잠들기도 해서 외출의 결심이 좀 쉬워졌다. 실천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고 조금씩 여유가 생기니 모임공지도 챙겨서 확인할 수 있고 모임에 나갈 용기도 낼 수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다짐했다. 제일 먼저 자리를 뜨지 않기로. 괜히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모임에 나갔더니 나 빼고 다들 비혼이었다. 낯설었다. 이런 모임은 처음인 것 같다. 2시간 정도 강의를 듣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모임에 있던 여덟 명 중 기혼자는 나뿐이었다. 그동안 내 친구들과의 주된 대화 주제였던 가족, 여행지, 전시, 책, 맛있는 김치 브랜드, 명절을 앞둔 기분 등은 전혀 대화 주제로 끼지 않았다. 사실 친한 친구들이 예술이나 책에도 관심이 있는 편이라 그동안의 대화 주제가 편협하지 않다고 (아줌마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날 모임은 조금 낯설었다.  


 새로 나올 아이폰과 에어 팟, 혼자 사는 집의 필수품, 책, 다음에 듣고 싶은 강연, 인터넷 비용 줄이는 방법 등 대화의 주제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아는 이야기도 있고 모르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나누는 모든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젊은(?) 싱글일 때는 모든 대화가 깔때기라서 소개팅, 선, 썸 등 이성 이야기로 모아졌는데, 이제는 그 나이가 약간 지난 걸까. 연애나 썸으로는 대화 방향 자체가 틀어지지 않았다. 신기하고 낯설었다. 싱글들이 많은 데서 기혼자는 으레 선배나 어른같이 굴며 결혼하니 어떠냐, 여전히 좋으냐,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 등의 질문을 받기도 하고 그들의 연애에 대해 되지도 않는 훈수를 둘 때도 있는데, 이날의 나는, 말하자면 소수자였다.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주제는 딱히 없었으며, 누구도 나에게 연애나 결혼에 관련된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웃음이 넘쳤고 즐거웠다. 순간순간 내가 기혼자들 속에 있지 않구나 하고 느낄 때 신선하면서도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생활 속에서 외로움과 낯섦을 느낄 소수자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잠시나마 체험해본 것 같다.


 나와 약간 거리를 두고 앉아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호정이는 애들 있잖아. 늦었는데 괜찮나.”

 이 말이 나에게 건네는 말은 아니었어서 그 옆에 있던 친구가 대답했다.

 “남편이 있겠지.”

 그 말에 이어 나올법한 말들ㅡ남편이 애들 잘 보냐, 가정적인가 보다 등의 말ㅡ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아이들 없이 하는 주말 외출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모임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사실은 아이들과 귀가 시간 약속을 했던 내가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는 바람에 마무리되었다. 끝까지 버티고 싶었는데.


 주말이 지나고 집에 오신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은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주욱 이야기했다. 밤늦도록 엄마가 오지 않아 아빠랑 밥 먹고 목욕하고 서로 머리를 말려주고 자리에 누웠을 때 엄마가 들어왔다고. 내가 듣기에 그 이야기는 늦게 들어온 나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없이도 아빠랑 잘 있었다는 칭찬받고 싶은 자랑이었다. 그러나 60대가 훌쩍 지난 엄마는 그렇게 들었을 리 없다. 무슨 애엄마가 그렇게 늦게 싸돌아다니냐, 주중에 힘들었을 김서방은 주말까지 무슨 죄냐며 잔소리를 하셨다. 그런 엄마도 이해한다. 나도 나의 패러다임에서는 엄마의 반응이 더 익숙하다.



  같은 무리 속에서도 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 독특하거나 소수자라고 해서 불행하거나 이상하지 않다. 이날 같은 경우 불행하거나 이상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였다. 결혼과 출산으로 남편과 자식에 메여 있는 내가.




 다양한 사람들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말과 생각이 틀에 갇히지 않도록. 나는 내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즐기고 직장생활도 하고 있으니 여러 상황에서 유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혼자서 하는 노력은 한계가 있었다. 대면하지 않고 직면하지 않으면 자기 머릿속에서만 쿨한 사람일 수 있겠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무리 중 한 명으로, 단 한 명의 기혼자로, 그래서 소수자인 나였지만 그 모임 중의 한 사람으로 도드라지지도 뒤처지지도 않았던 그 날의 특별했던 기분을 기억한다. 꼭 기억해야 할 그 날의 기분, 그 기분을 기억하며 ‘배려’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양보’라는 이름으로 오만을 부리지 않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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