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이 먹는다. 지금껏 살면서 나보다 많이 먹는 여자를 못 봤을 정도로 많이 먹고 잘 먹는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남자를 포함해도 나를 앞설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난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고 덜 먹지 못하고 늘 많이 먹어왔고, 어지간해서는 간에 기별이 잘 안 간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몸이 안 좋아 입맛이 돌지 않는 친구가 연락을 해온 적도 있다.
“도무지 입맛이 안 돌아. 너랑 밥 먹고 싶어. 너 먹는 거 보면 뭐든 잘 넘어갈 텐데.”라고.
나는 맛있는 걸 좋아하고 많이 먹기도 잘 먹기도 하고, 또 메뉴를 빨리 잘 고르는 편이다. 결정을 잘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교통정리를 잘한다(주장이 강한 편이긴 하다). 먹는 자리에서 나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나도 그런 내가 좋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내가 많이 먹고 잘 먹는 게 흠이 될 일이 아닌데(친구들이 뒤돌아 더치페이 치고 쟤 너무 먹는다며 뭐라 했을지 몰라도) 소개팅이나 썸을 탈 때가 문제였다.
게걸스럽게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 먹어도 배부른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많이 먹는다고 흉볼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 먹다가 흘리거나 해서 지저분해 보일까 싶은 걱정이 늘 있었다.
남편이 아직 소개팅남이던 시절, 함께 이탤리언 레스토랑에 갔다. 소개팅남이 각자의 파스타 하나씩, 함께 먹을 피자 한판, 샐러드 드실래요?하면서 샐러드까지 총 4가지를 주문했다. 소개팅남을 앞서 두어 번 만났던 터라 날씬한 체격에 비해 많이 먹는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먹겠다고 많이 시킬 줄은 몰랐다. 나도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먹었다. 정말 맛있던 레스토랑이었다.
아침부터 이 정도는 먹어줘야 식사인데
파스타를 하나 다 먹어도 기별이 안 가는 나는 상대방의 소개팅녀로서 예의상 반쯤 먹었을 때부터 ‘아, 배불러.’하며 내 뇌에 주문을 걸어 억지로 포만감을 불러와야 했었는데 이 소개팅남은 달랐다. 먹는 동안엔 먹는 것에만 집중했고, 내가 와구와구 먹는지 흘리고 먹는지를 살피지 않았다. 그저 ‘맛있게 잘 먹었다’만 남았을 뿐. 나보다 많이 먹는 유일한 남자, 아니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 우리는 썸을 거쳐 애인이 되었다가 결혼에 이르게 되었나 보다.
지금도 남편은 많이 먹는다.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고봉밥 두 공기를 뚝딱하고, 빵이나 과자를 후식으로 먹고, 과일로 입가심까지 해야 식사가 끝난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지만 마흔이 넘어가면 기초대사량이 절반으로 떨어져 전과 같은 양을 먹어도 살찌는 거라고 하기에 나는 2년간의 다이어트 끝에 덜 먹는 습관을 들였다. 힘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그래도 보통 여자들에 비해 많이 먹는 편이긴 하다).
먹을 때 빛났던 나는 이제 만들 때도 빛나는 나로 발전하고 싶고, 만드는 것에는 설거지가 필연이기에 설거지할 때도 빛날 것이다. 인생의 정오를 살고 있으니 미모도 빛나고 싶고 생각도 빛나고 싶다. 이 모든 것은 잘 먹어야 가능한 것이다. 미식가에게도 대식가에게도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