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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Sep 22. 2020

이혼하지 않은 8년, 결혼이라는 연애의 실패

죽을 때 까지 끝나지 않는 실패의 여정

연애의 성공이 결혼이라고 했다.

연애의 성공이 결혼인 줄 알았다.

단순히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 한 결혼은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했고, 그 감정은 논리적인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으며, 끊을 수 없었다. 20년지기 친구보다도 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사실은 치부)도 그에게는 창피하지 않았다. 신비로운 감정이었다.  


마치 정해진 수순인 것 처럼 결혼했다.

1월에 만나서 9월에 결혼했다.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왜 전화할까

왜 만나자고 할까

왜 밥사주고 커피사주고

왜 이렇게 친절할까-


다 알지만 모르는 척, 그렇게 했던 연애.

혼자의 행복보다 둘의 불행을 택하겠다는 각오로 했던 결혼.

'매달려서 결혼하니?'라는 말이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던 그 때.


미쳤어쳤어, 매달릴 데가 없어서.

둘의 불행을 택한 결과, 때로는 진짜 불행하고 가끔은 덜 불행했다.

대부분 그냥 그랬고 어떤 순간 행복했다.


불행은 지속적이지만 행복은 찰나이다.

불행은 익숙해지진 않지만 익숙하다고 생각하며 견디고

찰나였던 행복이 지속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오해하면서 지금껏 살았던 것 같다.

많은 위기를 넘기면서-


서로의 기억속에 아프게 혹은 아련하게 남는 것이 연애의 성공이었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름다운 것이 연애의 성공이었다.

연애의 성공인 줄 알았던 결혼, 후 만든 일상은 지지리 궁상맞고 지리멸렬하기도 해서 둘 중 누구 하나가 죽거나 서로 갈라서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지난한 시간의 향연, 이것이야 말로 연애의 실패.

'결혼'이라는 연애의 실패

현재진행형의 실패스토리

미래진행형의 실패스토리

매일매일 거듭되는 실패


사별보다 이혼이 어렵다.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것인가.

이혼하지 않고 8년을 견딘 인내심을 축하해주는 것인가.

오늘따라 날씨는 이렇게 좋을 일인가. 일단은 너무 좋았다.


남편의 점심시간에 맞춰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집으로 복귀했다. 딸의 결혼기념일에 딸의 딸을 봐주시는 내 엄마의 노고를 빨리 덜어드리고자.


날씨는 아름답기 그지없고, 이 날씨에 버스든 전철이든 타기가 너무 아까웠다. 집까지는 지하철로 3정거장에다 마을버스도 타야하는 거리인데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물집이 발바닥에 생겼다.


발을 전혀 안아프게 하던 통굽샌들을 신고 있었기에 걷겠다는 결심을 했던건데, 많이 걸으면 운동화를 신은 발이라도 아플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다른데도 아니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다니.

이런 경우 처음이다. 신기하다


결혼생활 8년이면 발바닥에도 물집이 잡힐 나이가 되는거구나.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처음'이라는 일과 '신기'한 일을 만나게 될까.



남편이 예약해둔 곳은 복어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사시미와 찜, 복어무침, 튀김, 지리까지 다채롭고 맛있게 나왔다.

적지 않은 가격이었는데 선뜻 결정하고 예약해둔 남편에게 박수를!


싫으네 싫으네 해도 결국 같이 살 남편.

얼마 전 어느 카페에서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다른 남자 만나고 싶어?"

선뜻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던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다른 남자 만나봤자 똑같아. 또 맞춰야 되고, 호정이가 맞춰줘야 되고. 호정이한테 내가 딱 괜찮아."


그냥 그때 결심했던 것 같다.

이 남자가 나랑 맞는 남자구나, 나랑 더 맞아갈 남자구나.

그땐 이렇게 생각했지만 또 달라질 수도 있다. 앞날은 모르는거니까.


꽤나 사랑했던 과거.

나름대로 사랑하며 사는 지금.

앞으로 남은 불행이 얼만큼이든 얼마나 힘들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

시간의 능력이 우리를 얼마나 더 단단하게 할지.

일단은 오늘을 기점으로 1년은 불행을 버티고 행복을 착각하는 노력을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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