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7세부터 머리의 특정 부분이 하예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뭣 모르고 뽑았는데 뽑다 보니 머리통 한 부분이 비었더라. 깜짝 놀라서 그 다음 부터 뽑지 않고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살 날이 많은데 벌써 반 백발이 되어, 두 달에 한 번씩은 뿌리 염색을 해야한다. 엄마는 지금도 염색약 사다가 집에서 하면 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뭐라고 하신다.
내가 둘째 낳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고자 머리좀 손볼까 해서 갔던 체인으로 된 미용실은 새로운 세계였다. 염색하기 전에 머리카락과 접하는 부분에 보호 크림도 발라주고, 두피 보호제도 뿌려주고, 가끔은 케어도 그냥 해주시고, 미용실에서 머리감는 시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파마와 염색으로 시작해서 뿌리 염색이 계속되자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가게 되어 나는 단골이 되었고, 전담해 주시는 선생님도 생겼다. 너무 좋았다.
가격은 다소(사실은 많이) 비쌌지만 소소한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다니고 있었다.
지난 주,
두 달을 채우기도 전에 도저히 못 버틸 만큼의 흰 머리가 생성되어 미용실에 갔더니 이거슨 나를 위한 패키지인가, 뿌리 염색 3회권을 162,000원에 팔고 있었다(보통보다 20~30% 저렴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현금으로 하면 10%할인이라고 했고.
원래 전담해 주시던 선생님이 다른 데로 가시는 바람에 새 선생님으로 갈아타긴 했지만 새 선생님과도 1년 넘게 만나고 있는데.
상한 마음에 리뷰 페이지에 와다다다다다다 쓰다가 그냥 지웠다.
내가 막 그렇게 리뷰 썼다가 선생님도 마음 상해서 재량껏 해주시던 컷 비용 할인도 안 해주시면 나는 더욱 더 호갱이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159,800원이라고 했어도 나는 16만원을 입금.. 아니다, 나는 800원 빼달라고 했을거다. 그럴 줄 알고 16만원 받았나. 200원을 일주일째 묵상하고 있다.나는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은 20억, 200억에도 쿨할 수 있는 사람인데(진짜?) 내 손을 벗어난 200원은 이렇게 내 마음을 후벼판다.
이런 일이 있었다. 6년전 쯤.
예전에 둘째를 임신했을 때 동네 산부인과에서 진료받을 일이 있었다. 진료비가 5300원이라고 해서 고운맘카드로 5300원을 결제하고 나와서 건너편 스타벅스로 들어가는데(울 애들 뱃속에 있을 때 먹은 것은 버거킹 와퍼와 스벅 바닐라라떼가 80%이상일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결제가 잘못 되었다며 멀리 갔냐고. 근처니까 다시 간다고 했다.
가서 전화받고 왔다고 했더니
"5500원을 결제해야 하는데 5300원을 결제해서요, 재결제 하겠습니다."
이 말을 하던 젊고 예쁜 간호사의 새침한 표정과 말투를 기억한다.
진짜 단전부터 웃음이 솟구쳐 나오려고 하는걸 참고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내 인생 최대치의 인내심으로 노력했다. 얼굴 근육이 막 나대려고 하는걸 참으며 결제취소-재결제를 기다렸다. 카드만 건네는 간호사에게 나는 영수증도 달라고 했다. 재결제한 영수증만 주길래 취소 영수증도 다 달라고 했다. 이게 내 자존심이라도 되는 것 처럼. 소심한 복수인가.
산부인과 나서면서 진짜 육성으로 웃었다.
와.
산부인과로 다시 향하면서도 좀 그랬었더. 결제가 잘못 된거면 얼마나 잘못됐길래, 5천원대 금액이 큰 것도 아닌데.
한 2천원쯤인데 5천원 넘게 결제해서 이러나, 정말 양심적이네 대박이다, 네이버플레이스에 좋은 말 많이 써놔야지 하면서 갔던건데.
집에 와서 남편에게 얘기하면서도 또 한번 웃었다. 그냥 웃겼다.
200원
200원
200원
200원
지난 주의 200원 사건을 겪으면서 6년전의 200원사건도 떠올랐다. 간호사의 200원에 대한 마음이 지금의 내 마음과 같았다면 만삭에 가까운 산모를 다시 불러서 재결제하게 해야지. 당연히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