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미’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취향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힌트를 얻기도 하고 선물을 고를 때 센스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해서 마음에 든다.
보통은 지향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힙한 아이콘이나 근사한 공간을 꼽곤 하지만, 나의 추구미는 좀 더 실존적이고 흐릿한 편이다. 굳이 말하자면 ‘어른스러운 사람’이랄까. 스트레스 속에서도 내 페이스를 잃지 않고 여유를 부릴 줄 아는, 태도와 마음이 단정한 그런 사람 말이다.
물론 사람은 생각만큼 쉽게 성장하지 않는다. 다 아는 것 같다가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틈만 나면 요령 피울 생각만 가득하다.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짱구 같은 나에게 ‘완벽한 어른’은 사실 넘지 못할 산이다.
그래서 정한 현실적인 타협안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해내는 사람은 더 없을 거라 믿고 싶다. 나부터가 꽤나 가성비 떨어지는 그릇과 인내심을 가졌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 날이면 들키지 않기 위해 ‘어른 코스프레’를 한다. 내 감정이 소중한 하루를 통째로 삼키지 못하도록, 상상 속의 단정한 어른을 몸에 빙의시키는 거다. 다시 말하면 나만의 ‘어른 필터'를 가지고 있다.
한때는 "불편해도 예쁜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닥터마틴에 거의 발목까지 오는 롱코트를 입고 하루 종일 잘도 다녔지만 이제는 불가능이다. 옷이 무겁고 치렁치렁하면 짜증부터 나는 걸? 정신 차리고 보니 내 패션 신조는 수많은 인생 선배님들처럼 ‘가벼운 게 장땡’으로 바뀌어 있었고, 깔끔한 옷은 여유로운 이미지에 가장 중요한 일종의 '갑옷'이 되었다.
아주아주 유명한 초코쟁이로서, 원래 나의 이너피스 담당은 핫초코였다. 근데 학원에서 온종일 떠들다 보면 피곤함을 물리쳐줄 아메리카노도 사치고 그저 물이 간절해진다. 그렇게 내 최애를 꿰찬 페퍼민트 티. 입안을 싸하게 감도는 민트 향을 느끼고 있으면, '난 지금 아주 차분한 어른이다'라는 최면이 꽤 잘 걸린다.
유독 예민해서 누가 스치듯 한 말에도 쉽게 긁히는 날, 필요한 건 바로 ‘가벼운 미소’다. 같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장난에 더 자주 사용하게 되는 부분이 왠지 부끄럽지만, 욱해서 발끈하는 대신 일단 웃으면서 대답을 한 템포 미룬다. 의외로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장난을 치다가도 이렇게 정체불명의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면 조금 무서워하는데, 그게 은근히 속이 시원하다.
추구미와 도달미는 다르다더니, 그저 '흉내 내기'에 그친 이 모든 행동에도 보상은 필요하다. 선생님 모드를 유지하느라 뻣뻣하게 세운 목이 뻐근해질 때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질리지 않는 고민을 시작한다.
"오늘 저녁엔 뭐 먹지?"
이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답답했던 가면을 슬쩍 벗고 다시 짱구 같은 본체로 돌아온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맛있는 저녁을 향해, 무사히 어른으로 퇴근한다.
[오늘의 한 마디] 여러분이 무사히 하루를 버티기 위해 장착하는 '어른 필터'는 무엇인가요? 우리, 겉모습은 제법 그럴싸한 어른으로 살다가 맛있는 저녁 앞에서만큼은 다시 짱구로 돌아가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