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생일.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생일이 있는 달만큼은 만나서 밥을 먹자고 약속했었다. 아직까지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고 여전히 얼굴이 아플 때까지 웃어야 끝이 난다. 하지만 동시에 별로 즐겁지가 않다.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오래된 친구들 특유의 유치하고 시답지 않은 대화가 분명 재밌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힘든 칙칙한 회색 방울이 커지고 있었다. 영화의 연출처럼 내 안과 밖의 장면이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이 스스로의 가식에 실망스러움도 밀려들었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분명 따뜻한 시간이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지겹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갈림길을 거쳐 각자 서 있는 길이 너무 달라서. 서로에게 공감하려면 애를 써야 하는 그저 그런 사회생활 같았다.
어느새 가끔 허전해도 고요히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편해진 걸까. 관계에도 계절이 있다면, 소중했던 친구들을 두고 낙엽을 떨구며 긴 휴식에 들어가는 겨울의 입구쯤을 지나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