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무늬 Aug 02. 2017

[택시운전사] 아래로부터의 영화

(*택시운전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 google)


은정 아버지, 기사 아저씨, 베스트 드라이버, 그리고 택시 운전사.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 만섭(송강호)의 이름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관객들은 굳이 그의 이름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는 데에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 주인공이 위치한 사회적 위치가 우리가 위치한 혹은 우리 이웃이 위치하고 있는 친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보통의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 명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폭압에 저항하는 보통의 사람들이고, 다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20세기 최고의 석학이자 역사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릭 홉스봄은 이름을 남길 수도 없고 남기지도 못한 흔해빠진 사람들 즉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이 영화는 ‘아래로부터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가 단박에 상황을 해결해주는 영화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의 희생이 점층적으로 쌓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러한 지점으로 인해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얻는 통쾌함이나 짜릿함보다는 처절함이나 슬픔이 남는다. 왜냐하면 진실을 위해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고, 그것은 우리 역사 속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로 산뜻하게 시작한다. ‘단발머리’가 포함된 조용필 1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조용필은 이 앨범으로 1980년에 TBC가요대상, KBS 가요대상, MBC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가수상을 휩쓸었다. 만섭(송강호)이 택시를 운전하며 듣고 있는 조용필의 ‘모나리자’는 그가 입고 있는 노란 정복처럼 경쾌하다. 

(출처 : google)
내 마음 외로워질 때면 그 날을 생각하고
그날이 그리워질 때면 꿈길을 헤매는데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처럼 그는 사연이 있는 사람이다. 사우디에서 5년간 고생하고 온 만섭은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것을 보고 “사우디에서 고생 좀 해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택시를 그 어떤 것보다 애지중지한다. 그 이유는 5년간 사우디에서 벌었던 돈을 아내의 병원비로 다 써버렸는데 그중 일부를 아내의 부탁으로 택시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와의 시간을 택시로 맞바꾼 것에 자책을 하고 있는 만섭은 택시를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그리고 그러한 택시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딸인 은정이다. 어느 날 은정은 자신을 놀리는 집주인 아들과 싸운다. 만섭은 그 아들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밀린 월세로 인해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오고 만다. 은정은 그러한 만섭을 보고 속상하지만 아빠를 위해 저녁상을 차리는 속 깊은 아이다. 



<신발>


(출처 : google)

만섭은 딸아이가 신발 뒤를 꺾어 신는 것을 본다. 만섭은 그러한 딸에게 새로운 신발을 사주겠다고 쉽게 약속할 수 없다. 그리고 광주에서 나오자마자 딸아이의 신발을 산다. 극 초반에서 나왔던 신발은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보인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도구이자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이러한 신발이 중요하게 보였던 장면은 총 3번이다. 

 첫 번째는 은정의 신발이다. 딸아이의 신발은 딸아이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새로운 신발을 살 때 딸아이의 발 치수를 기억하는 만섭의 모습에서 딸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광주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주인 잃은 신발들이다. 광주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장면보다는 신발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으로도 우리는 그 참혹함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구재식 (류준열)의 신발이다. 결국 구재식은 죽고 만다. 만섭은 벗겨져 있는 구재식의 발에 신발을 신겨 준다. 나는 바로 이 행위가 타인의 관점, 혹은 타인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만섭이 광주의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으로 보인다. 그때부터 만섭은 달라지고 행동한다. 


<언론>

(출처: google)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리영희 기자는 자신의 기자정신을 위와 같이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그중 기자는 진실을 위해 진실을 알리는 직업 중에도 최전선에 있다. 극 중에 나온 위르겐 힌츠페터는 우리에게 “기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좋은 대답을 해준다. 날조는 아주 쉽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날조가 가지고 있는 논리에 쉽게 속는다. 그러한 날조를 깨는 것이 단 하나의 진실이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날조된 5.18 사건을 진실로서 새롭게 하였다. 극 중에서 위르겐 힌츠페터는 광주로 오기 전에 일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일본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 무료함 속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한국소식을 듣고 무작정 광주로 향한다. 솔직히 위르겐 힌츠페터는 처음부터 사명감을 가지고 기자생활을 하던 것은 아니었다. 극 중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도 처음 기자생활을 할 때면 돈 때문에 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google)

하지만 광주의 참혹한 광경은 그에게 어떠한 사명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오직 진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로 인해 위르겐 힌츠페터는 그 사명감에 답을 한다. 


<택시운전사>

현재 택시운전사는 28만 명(16년 10월 통계)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직업은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택시운전사와 버스 운전사, 화물운전사, 택배기사, 퀵서비스 기사 등이 포함되는 운수업부터 시작하여 집배원 등으로 관련되는 우편업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일을 하고 있다. 도로는 도시의 강이며 자동차는 그 강을 흘러 다닌다. 그리고 강 위에서 역사가 만들어진다. 수많은 근대화의 시작은 도로와 함께 시작했다. 도로는 사회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택시운전사에서 나오는 도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만섭은 딸을 만나러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위르겐 힌츠페터를 두고 새벽에 몰래 나와 광주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혜은이의 제 3 한강교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며 다시 광주로 돌아간다. 


(출처 : google)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이며는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날 거예요


영화의 개봉과 더불어 최근 ‘무제한 노동 허용 조항’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제59조를 수정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제59조는 노동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에 따라 운수업과 우편업 등 26개 업종은 주당 12시간 넘게 초과근로할 수 있는 조항이다. ) 이 땅의 모든 택시운전사 그리고 모든 근로자들의 노고가 조금이나마 줄어드길 기원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기존에 나왔던 5.18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광주에서 살고 있지 않았던 외부인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분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겪었지만 광주에서 국한되어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동시에 관찰자였다. 하지만 관찰자의 입장을 벗어나 광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외부사람들은 분명 특별한 용기가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에게는 가끔 내가 해당이 되지 않는 다면 무섭도록 차가워지는 습성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에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라이트] 문라이트에 대한 고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