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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Oct 15. 2020

[어디갔어, 버나뎃] 엄마가 남극으로 떠났다

어디갔어, 버나뎃

어디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 . 2019)



이 영화는 엄마라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버나뎃은 어떻게 보면 신경쇠약에 걸려있는 엄마처럼 보인다. 불면증이 계속되고 사람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동시에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버나뎃은 여행도 싫어하고, 말도 빠르며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느낌의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사람 곁에 정말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남편과 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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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애틀에 대해서 자주 불평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가 렘 콜하스가 건축한 시애틀 공립도서관이라고 했다. 렘 콜하스라니. 아직까지 해외에 있는 그의 건축을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접했던 그의 공간은 건물 내부에 빛을 성스럽게 배열하고, 구조적 변조를 통해 이례적으로 명상을 불러일으킨다.(예를 들면 리움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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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버나뎃을 알아보는 건축학도가 나타난다.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버나뎃은 어떠한 분야에서는 정말 유명했으며, 동시에 그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이후에 버나뎃은 자신을 검색해보고 영상을 하나 보게 된다. 우리는 그 영상을 보고 젊은 시절의 찬란한 버나뎃을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영화는 단독적인 평면에서 다른 형태를 중첩하며 영화적 층위가 나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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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뎃은 어떠한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혹은 있었다) 이 두 가지로 영화는 계속적인 줄다리기를 끊임없이 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아마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말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붓고 나서였을 것이다. 그녀의 친구는 말한다.”People like you must create. That's what you were brought into this world to do, Bernadette. If you don't, you become a menace to society.” 그녀는 어떠한 결핍을 직시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남극에 가서 예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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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과 성격은 나누어져 있다. 그것으로 직업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 직업들은 대부분 객관식이다. 나는 나의 직업을 주관식 답안으로 만들고 싶다. 예술가는 결국 무엇을 하던 예술을 하게 된다. 예술을 포기하는 것은 없고, 잠깐 쉬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응고되어 흘러나온다. 예술을 하는 자는 결국 예술을 하지 못하면 사회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예술을 하면 사회는 분명 도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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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케이트 블란쳇의 작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나 역시 보이후드와 비포 시리즈의 팬으로서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영화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을 하지 못하거나, 예술을 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감정적 해소나 당위성을 손에 쥐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자신이 분명 어떠한 예술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버나뎃의 입에서도, 가족들의 행동에서도 나온 게 아니라 친한 친구의 입에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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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클레이터 감독은 미장센이나 촘촘한 플롯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보다는 대사로서 극을 풍성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감독같이 보인다. 이 영화 역시 최고의 갈등 상황에서 내뱉은 대사들은 맛깔스럽다. 그리고 신경쇠약적인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일전에 블루 재스민에서 연기한 재스민 역할과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그 결이 조금 다른 점은 재스민은 어딘가 가볍고 천박한 느낌으로 연기를 했다면, 이번 역할은 무겁고 성스러운 느낌으로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불안증세를 가지고 있음에도 전혀 다른 연기톤을 하는 케이트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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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가 나온다. CG 인지 모를 고래도 나온다. 남극은 그러한 곳이다. 자연이 주는 광대함이 공포로 다가오는 동시에 경이로움을 주는 곳. 그리하여 나의 죽음이 목전에 있는 서늘함이 있는 그러한 곳. 그리고 아무런 감정 없이 무심하고도 천천히 움직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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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데 이상한 포인트에서 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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