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술가는 아주 늦은 나이에 붓을 잡았다. 아마 반 고흐가 처음으로 붓을 잡은 27세보다 더 늦은 나이에 붓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어떠한 소속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미술을 완성한다. 완전히 쓰지 않던 색감으로 풍경을 그렸다. 관객들은 그 풍경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분명 자신들의 기억 속에 그 풍경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는 미술에서 사진으로 확장된 구도의 미학을 완벽하게 재현해 나가며 점점 거대한 작품들을 차례로 완성해갔다. 그의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저절로 숭배의 마음을 들게 했다. 관객들은 작품을 보면 이상하게 만져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전시 첫날에 경고음이 다섯번 넘게 울리자 전시회측에서는 다음날 그의 작품 앞에 강력한 펜스를 설치 하였다. 그러자 무릎을 꿇는 관객도 생겨났고 심지어 작품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우는 관객들도 생겨났다. 한 번이라도 그 작가의 작품을 봤던 사람들은 각자가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 작품을 보는 사람의 수가 바로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의 숫자였다. 작가는 금세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은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그는 그 해 미술경매시장을 휩쓸었고 그의 작품이 하나라도 있는 갤러리나 전시회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시각 속에 자신의 예술을 한정 짓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감각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미술은 모든 관객들로 하여금 온전히 관객들의 모든 오감을 완벽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의 미술은 이제 하나의 예술로서 완벽해져갔다. 그의 예술은 어떠한 방에 존재하였다. 관객들은 한 명씩 그 방에서 들어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방에서 나왔지만 그 방에서 본 것을 묘사할 수 없었다. 그것은 묘사가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묘사가 불가능 한 것에 대하여 예술이 아닌 공포를 느꼈다. 예술인가 아닌가 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논쟁이 격해질 수록 그의 예술은 더욱더 유명해져갔다. 바로 그 시점에 어떤 저명한 늙은 미술평론가가 "이 예술에 대한 해석을 포기하는 것은 예술의 위대한 진보이다" 라고 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왜냐하면 이 예술을 경험했던 모든 이들은 분명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맡았고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방에서 나오고 나면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 마음속 어느 구석에 자리잡았다. 이 예술의 감각 어느 한 구석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감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존재 하지 않았다. 이 예술은 설명할 수 없었다. 인간이 알고 있는 것에는 이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설명될 수 없었다. 그것은 정말 예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