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기담 수집가>를 읽고
'책은 작가가 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사연을 덧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헌 책방 기담 수집가>의 저자 윤성근님의 말이다. 그는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오래되거나 절판된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책을 찾아주고 그 수수료로 책에 얽힌 사연을 받는다.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희박한 정보임에도 끈질기게 찾아내는 저자의 탐정보다 더 탐정 같은 추리력과 해박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찾는 사람들의 사연 또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차지하는 어떤 지점이 특정 책과 연관되어 오랜 세월 풀리지 않던 미궁 속 수수께끼가 카타르시스로 다가오는 사연들이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책. 내게도 이런 책 한 권 있다.
작년에 우연히 박스에 보관 중이던 책들에서 발견한 '연금술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책의 뒤표지에는 부산 동보서적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고, 책표지를 한 장 넘기니 속지 첫 장에 친구가 내게 선물로 주면서 ‘짝지에게~’로 시작하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사회 초년생일 때 대학평생교육원에서 복화술과 동아구연을 배우면서 만났다. 생각 코드가 비슷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매료되었고, 긍정 에너지를 불태우며 몇 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는 아이 엄마로 인생 선배로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시아버지와의 대화 내용을 가끔 전해들을 때면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곤 했다. 비록 동년배이지만 아직 미혼인 나에게는 그는 이미 어른이었다. 그저 평범한 어른이 아니고 어린왕자 같은 순수함을 지닌 어른이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나는 곧 결혼을 하게 되었고 부산을 떠나 멀리 여수에 살게 되면서 차츰 연락이 뜸해진 것으로 기억된다. 메모 끝에 쓰여진 년도가 밀레니엄 직전이었다.
이 책을 발견하고 벅찬 감격과 함께 그때의 추억 속에서 잠시 유영하다 짝지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오래된 수첩에서 마침 짝지의 집 전화번호와 폰 번호를 입수했다. 그 수첩이 지금껏 버려지지 않고 존재한 것만도 신기해 점점 사건이 흥미진진했는데 역시나 실낱같은 기대는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런 사람 없다는 짧은 답변과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메시지만 귓전에 맴돌 뿐이었다. 다시 힘을 내어 SNS 이곳저곳을 뒤져보았지만 허탕이었다.
그리고는 <연금술사>를 다시 읽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문장이 그때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슴에 깊게 와 박혔고 나에게 어떤 강한 믿음의 주문을 외워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그 주문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짝지가 더욱 그리워졌지만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우연히 발견된 옛 추억이 덧입혀진 책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저자는 말한다. '책은, 그 책을 만날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책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간절한 마음을 알아보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거라고 할까요? '
그렇다. 친구가 건네준 그 책은 이사를 몇 번 하면서도 나도 모른 채 줄곧 나를 따라다녔고 내 마음 속 간절함이 있을 때 하필 또 그 간절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끔 적절한 구절이 내게 와 박혔다. 이 책은 나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나는 책을 소지하고 있지만 기담수집가에게 가서 의뢰해도 될 만한 사연을 가진 나의 책과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헌 책방 기담 수집가>가 아니었으면 진흙 속 진주의 가치를 이렇게까지는 몰라봤을 것이다.
이 책을 엮게 된 저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반하고,
사연들의 구구절절함에 감동하고,
저자의 탐정가 버금가는 실력에 놀라고,
이 책은 여러모로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