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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Nov 04. 2023

얕게 말고 깊게

< 셀프브랜딩하는데 주저말기  >

수년 전 블로그를 처음 만들 때가 생각난다. 남들이 다 하니까 까짓것 나라고 못하겠어 하는 맘으로 시작했다. 당시는 중국어 교습소를 운영 중이어서 학원 홍보용은 기본이고, 나의 족적을 남기는데 이만한 공간이 없겠구나 싶었다.


계정 만들고, 자기소개 간단히 하고, 카테고리 몇 개 설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포스팅 하면서 속으로 ‘별 것 아니네’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별것 아닌게 아니었다. 


잘 나가는 블로그들을 보면 차원이 달랐다. 파워 블로그, 이웃수가 많은 인기 블로그들은 내 것과 질적으로 양적으로 차이가 컸다.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잘 못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시간과 공을 들이자니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이치는 빤하지만 실행까지는 멀고 험난한 일이다. 이익은 내고 싶은데 초기 투자는 두렵고 망설여지는 그런 상태와 비슷하다. 


난 그저 ‘해 봤다’였다. 한마디로 수박 겉핥기식이었다. 수박을 아무리 두드려본들 그 속을 알 수 없고, 딱딱한 껍질로는 속살의 부드러움을 짐작하기 어렵다. 짙푸른 색 위의 검은 다시마 같은 줄무늬만 보고서 환한 붉은빛 맛과 색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친구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몇 해 전 다녀온 단체 유렵여행에서 뭘 봤는지는 기억에 없고, 오직 이른 새벽부터 버스에 오르락내리락 한 일들만 생각난다고 말했다. 역시 ‘가봤다’는 쭉정이만 남고, 알맹이는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가봤다에 지나친 방점을 찍다보니 생긴 오류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 발자국만 찍고, 사진 한 컷 찍고 그렇게 찍기만을 하고 버스에 올랐으니 친구는 그저 ‘가 봤다’일 뿐이었다. 


단지 들어본 것에, 해 본 것에, 가 본 것에 만족하면 그 이상의 매력을 알 수가 없다. 들은 것을 들은 대로만 전하면 처음에는 ‘~그렇다더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실제 ‘그렇다’로 고착 되기 십상이다. 해 봤다는 것에 그친다면 발을 깊이 들여놓은 이후의 쾌감을 영원히 알지 못한다. 가 본것에 그친다면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버린 본전 생각에 마음만 쓰라린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지도 1년이 넘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은 올리기를 꾸준하게 하면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의 애정만 쏟았다. 다정도 병이란 말을 너무 깊이 새긴 걸까. 깊은 애정을 가진다고 큰일나지 않을텐데. 아  아니다. 좋은 방향으로 큰일 날지도 모르는데 그걸 못해내고 있다. 졸렬한 문체는 어쩔 것이며, 형편없는 라이킷의 갯수는 날이 가도 알을 깔 줄 모른다. 어찌된 영문인지 에세이부문에 크리에이터로 선정되기는 했다만, 주목받고, 뽑히고, 메인화면에 뜨는 사람들의 작품은 늘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잔치인 것 같다. 

브런치는 내게 나만의 글쓰기 공간을 부여해 주었다. 까다롭고 문턱이 높은 심사를 거쳐서 받은 영예는 아니지만 일정부분 심사라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블로그와는 다르다. 그런 플랫폼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하고 있어’ 내지는 ‘해봤어’로 안일하게 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동영작가의 브런치 관리 강좌를 듣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나는 또 수박 겉만 핡다가 맛없어 돌아설 뻔 했다. 핵심은 셀프브랜딩이었다. 자기계발 혹은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는 키워드를 잡았다면, 그 키워드로 셀프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간단한 원리라니 일단은 브런치 리모델링이 절실해졌다. 맹목적인 글쓰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브런치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브랜딩 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동감했다. 원하는대로 일이 성사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좇아가면 공감도 얻고, 응원축하금도 받고 더 나아가서 출판사에서 콜도 받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해 본 것에 그치는 것은 내 발전에 있어 최대 적이다. 스스로 브랜딩 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많아졌다. 거꾸로 생각하면 거대한 기업들이 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준거나 마찬가지다. 내 돈 들이지 않고 나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기회니 제대로 발 담궈 보리라 마음먹는다. 먼저 나를 가장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키워드 하나 혹은 여러 개를 찾는다. 키워드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쓰다보면 거꾸로 글이 내 삶을 조명해 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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