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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Nov 25. 2023

책을 내기 전에 책에 먼저 등장하게 된 사연

      " 그대는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특별한 영향을 받은 적이 있나요? "


저는 운이 좋게도 그런 분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10년이 넘었지요. 중국에서 몇 년을 살다가 다시 여수로 돌아갔을 때였습니다. 결혼하면서 수년을 살던 곳이었지만 여전히 낯설더군요. 한 뙈기의 내 삶이 삽에 의해 푹 패여 나간 듯한 공허함을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주위 잔디가 새순을 틔워 빈자리를 메우는 시간만큼이나 지난했던 날들이었지요. 힘겹게 몸을 추스르고 도서관 독서토론 프로그램에 등록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명선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돌직구와 유머와 호방한 웃음을 소유하신 분이었습니다. 돌직구는 날린다라고 표현하지요. 그야말로 돌이 날아오듯 급작스럽다는 뜻으로 부정적인 표현법에 잘 어울리는데요. 샘의 돌직구는 빠른 판단력으로 적재적소에 응수한다는 저의 기준에서 매우 부러운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유머, 유머야말로 훈련으로 안 되는 타고난 능력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뿌리 뽑을 수도 이식할 수도 없는 재능이라며 선생님의 유머에 숭고함을 표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호방한 웃음소리는 어떻구요. 타인까지도 즐겁게 하는 힘이 있고, 호방한 웃음소리 한 방이면 없던 문제도 해결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박식함을 기본 베이스로 돌직구와 유머를 적절하게 뿌린 휘핑크림 위 쿠키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함께 독서토론 모임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면서 더욱 책을 사랑하게 되었지요. 책을 많이 읽으면 선생님이 겸비한 자질들을 갖출 수 있을거라 믿으면서요. 그때부터 저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평생 책 읽고 글 수업을 하면서 살 것만 같았던 선생님은 어느 날 쇼핑몰에 입점하여 음식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지금은 사업체를 두 군데나 운영하시면서 그야말로 카프카의 그레고리만큼 놀라운 변신을 하셨지요. 선생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각성제이자 힐링 존이 되어 준답니다.


또 책을 냈습니다. 나이 칠순 언저리인 선생님은 사업체를 꾸려가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펴낸 책은 『하여튼, 100명의 여자 이야기입니다』라는 수필집입니다. 때로는 독서토론 수업할 때가 그립다 하지만, 어마한 돈도 벌면서 글쓰기 본업에 충실 하신걸 보면 큰 미련 없어 보입니다.


책 속 100명의 여자들 이야기 한 꼭지에 저를 담았습니다. 영광스럽다 못해 부끄럽기까지 하지만 3년 전 우울해 하는 시어머니를 위한 저만의 프로젝트 이야기를 선생님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나이가 들고, 며느리도 맞고 보니 저의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다 하셨지요.


< 딸이 이 글을 보더니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흐 >


내용인즉,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쉬이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우울 증세를 보였습니다.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것도 한계가 있더군요. 어머니 평생 살아오신 이야기를 실컷 토해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계획했습니다.


아침에 전화 드려 오늘의 미션 문제를 드렸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첫인상’, ‘아버님이 가장 미웠을 때’, ‘어머니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 ‘가장 힘든 시기’, ‘홀시아버지를 모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 등등 그리고 저녁에 전화를 드려 하루 종일 생각한 오늘의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드렸지요. 처음은 부끄러워 하시더니 곧 한 시간을 넘게 통화 하는 날이 잦아지더군요. 이런 계기로 어머니가 좋아지신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긴 겨울을 나고 이듬 해 봄의 충만함과 맞물려 어머니는 다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녘을 누비게 되었지요. 다행히 어머니는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답니다.


책 속 100명의 여자들은 선생님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묘사한 글입니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인연들을 간과해 버리지 않고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그대들’ 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 저는 ‘사람 응대하는 일 정말 힘들다’는 제목으로 일기를 썼더랬습니다. 옷깃 정도 스친 것도 인연이랬는데, 주위 사람들과의 만남을 어느새 쉽게 여기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너’도 ‘당신’도 ‘그대’도 떠올리며 ‘감사합니다’라고 낮게 조렸습니다.


책 펴는 것이 하나의 목표인 제게, 책에 먼저 등장하게 된 사연은 어릴 적 소풍 전날 만큼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앞으로 펴낼 저의 책 속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더욱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겠지요.


다시 한번 저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써 주신 명선샘께 감사를 드리며 출판에 진심어린 축하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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