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님을 위한 졸업식장

< 24년도 카이스트 졸업식장 에서 >

졸업식장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대통령이 졸업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어젯밤에 학생들에게 공지한 모양이었다. 부모들도 늦지 않게 와달라는 당부를 전해 들었다. 식장 앞에 도착했을 때 대기 줄은 몇 겹으로 꼬이고 꼬인 채 늘어져 있었다. 보안검색 때문에 입장이 늦어지나 보다며 내 순서를 기다렸다. 하지만 입장 시간인 오후 1시 30분도 되기 전에 나로부터 한참 앞에서 입장이 차단당했다. 식장이 만석이라 더 이상 들여보내 줄 수 없으니 옆 강당으로 가서 스크린으로 식을 관람하라고 했다. 졸업생 1인 2매의 입장권을 교부받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입장권만 있으면 당연히 입장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졸업식장의 주요 인사가 바로 내 자녀의 졸업식을 보기 위해 오는 가족이 아니던가.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대통령 때문에 가족이 식장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이 가당키나 하냐는 내용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진즉에 포기하고 옆 강당으로 이동했지만 비교적 앞줄에 서 있던 사람들은 경호원들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희박하나마 기대를 갖고 기다렸다. 

실상 안에는 만석이 아니었다. 중간 중간 빈자리가 많았고, 보안 명목으로 무대에서 가까운 곳 좌석을 아예 통제해버린 이유로 그만큼 수용인원도 줄어든 것이다. 뭐가 그리 불안한 게 많았는지 최소 인원만 입장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적당히 둘러대면 잠잠할 줄 알았던 걸까. 어떤 이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분개하며 소리치고, 어떤 이는 ‘언니졸업식에 언니도 못 보게 한다’며 울며불며 항의했다. 그제서야 순차적으로 입장시켜 주었는데 그러고도 족히 2백 명은 더 들어간 것 같다.  

학사, 석·박사 졸업생들과 귀빈들 그리고 관련 스텝들이 1층에, 가족 관람객들은 2층 객석을 가득 메웠다. 무대를 기준으로 앞 블록에 박사수료생들이, 중간에 석사, 맨 뒤쪽에 학사생들이 자리했다. 개회식을 시작으로 장장 3시간 동안 치러질 식이 시작되었다. 곧 대통령의 축사가 있었다. 축사 도중 1층 석사생들이 자리한 블록에서 일순간 어수선한 동향이 포착되었고 이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눈앞에 뭐가 지나간 거지?’ 잠시 어리둥절해야만 했다. 방금 전의 일을 복기해 보니 순간 몇 마디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그 일대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곤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자리한 곳이 사건이 일어난 블록의 바로 위층이었으므로 자세한 동향을 살필 수가 없었다. 곧 ‘방금 무슨 일이에요?’ 라며 낯설지만 옆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학생이 끌려 나갔어요’ 내 눈이 의심스러워 옆 사람의 눈까지 동원해서 확인해야만 했다. 순간 ‘미쳤군.00’(욕이 튀어나왔다). 그러는 사이 축사는 한순간의 주춤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듯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정말 그랬다.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국민 그것도 빛나는 졸업식의 주인공을 개 끌 듯 끌고 가는 장면을 그대로 두었다. 연구개발비의 예산을 엄청나게 삭감해 놓고도 축사에서는 그와 상반된 이야기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통령이 읽고 있는 축사는 속빈 강정이었고 영혼 없는 설명서였다. 쓰는 사람 읽는 사람이 따로 라지만 최소한 대통령 본인이 전하는 축하의 메시지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학생이 연구비 삭감에 대한 피켓을 조용히 들었을 때 그것마저 강압적으로 제지를 해야 했을까. 허수아비 역할에 충실한 분께 마음의 거리낌을 바란 건 지나친 기대였을까. 설혹 한마디의 변명으로라도 연구생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렇담 최소한 과격하게 입틀막하며 제지하는 경호원의 태도에 한마디의 유감이라도 표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졸업식에서의 온갖 행태가 이해불가였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에나~’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평생 한 번 있는 아이의 졸업식은 씁쓸함으로 남았다.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지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사라지는 군사정권 때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