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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Mar 04. 2024

등산과 독서

< 5시간 등반 후, 등산과 독서의 닮은 점 >

산을 오르기 전의 설레임은 책을 펼치기 전의 설레임과 닮았다. 가고 싶었던 산을 처음 가게 될 때와 읽고 싶었던 책을 펼치게 될 때의 기대는 더욱 그러하다. 산을 오르는데 거창한 장비가 필요치 않듯 독서도 책만으로 족하다. 요즘은 어떤 취미를 가지더라도 장비발에 설레발을 치지만 등산과 독서만은 예외라고 믿고 싶다. 


보드블록과 흙이 경계를 짓고 있는 도시 안의 산은 몇 발자국의 수고로움이면 더 큰 것을 내어준다.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마음 내키는 대로 산을 오를 수 있는 건, 몇 번의 손가락 놀림으로 모든 책을 구할 수 있는 간편함과 닮았다. 


산의 전체모습을 담아놓은 안내도는 책의 목차와 닮았다. 산의 지형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봉우리들의 이름, 등산코스별 시간과 거리가 간단명료하다. 오늘 내가 누빌 산의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담고 발걸음이 옮겨질 코스를 정한다. 책의 목차에서 보여주는 챕터와 소제목들을 보면서 전체적인 구성을 파악하는 작업과 같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간혹 목차의 제목을 뒤적이는 행위는 코스대로 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작은 이정표를 확인하는 일과 닮았다.  

완만하던 경사가 끝나자 가뿐하던 발걸음에서 점점 무게감이 느껴진다. 숨가쁨의 박자가 빨라질수록 등짝에 자작하게 땀이 배기 시작한다. 이내 곧 어지러운 생각들이 머리를 뒤흔든다. ‘내려 올 산을 왜 오르느냐’는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산을 오르는 이유를 묻자 ‘산이 거기 있어서’라고 한 산악인의 말도 떠오른다. 급기야는 ‘내가 뭐하러 이 짓을 하러 왔나?’라는 후회까지 든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오름은 책의 지리한 부분을 참고 읽어 내려가는 과정과 닮았다. ‘이 무슨 궤변 같은 소리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당장 내동댕이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다. 계획한 코스를 완주하리라는 일념과 완독을 향한 포부는 닮았다.   


발아래 땅만 쳐다보며 오른 산 중턱에서 숨을 돌리려 섰을 때 지나온 길은 뿌듯함이다. 일단 가보자라는 마음이 언제 끝나나로 연결될 즈음 뒤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는 마음은 위로이다. 많이 왔네. 반은 왔어. 내가 저 길을 지나왔구나. 대견해라는 마음이다. 좀처럼 넘어가지 않던 책장이 하나하나 왼편으로 넘겨지더니 어느새 반으로 나누어 펼쳐질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반을 읽었네. 그때부터는 속도가 붙는다. 포기할 것 같았으면 진즉에 포기했을 것이고 이제 흥미가 붙어 책장은 쉬이 넘어간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쾌감을 향한 열망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열중하는 산 오르기와 너무나 닮았다.  


몇 번의 쉼과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산 정상에 오른 쾌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짜릿한 기분과 진배없다. 정상에 서서 탁 트인 시야로 먼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건, 책의 결말을 알고서야 비로소 책의 진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광경과 닮았다. 동서남북을 둘러보며 믿기지 않는 높이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대견해 한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위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상쾌함이 올라오면서 쌓였던 피로감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한장한장 넘겨 더 이상 넘길 책장이 남아있지 않아 한 덩어리가 된 책을 집어 들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매만질 때의 흡족함과 너무나 닮아있다. 


하산할 때는 올라갈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산의 능선도 계곡의 생동감도 감상할 만큼 여유 있다. 그제서야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넓은 아량으로 인사도 건넨다. 이는 다 읽고 덮었던 책을 처음부터 다시 펼쳐 저자의 이력을 다시 한번 눈팅하고 목차을 짚어가며 읽었던 부분을 복기하는 일과 같다. 책장을 중강중강 넘기며 밑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읽는다. 오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려올 때 보이는 여유와도 닮았다. 


누구는 등산을 우리네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조건 직진해야하고 어려운 고비를 만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등산의 과정이 독서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5시간동안의 수락산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힘들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다는 면에서 생각이 시작되었는데, 등산객은 그렇게 많은 반면 왜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까라는 생각까지 뻗게 되었다. 한국의 성인 연평균 독서량이 채 한 권이 못 된다는 말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2012년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를 찍으면서 독서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고대 국문과 이순영 교수)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책에서 찾을 지식, 정보, 지혜를 죄다 스마트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통이 터지는 듯한 아픔을 겪어야 단단한 근육이 된다. 내면의 근육 또한 읽고 생각하고 지리한 시간을 견뎌야만 만들어 진다. 쉽고 간편하게 해서 만들어지는 근육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다음 읽을 책을 신중히 고르듯 다음 등반할 산도 물색하는 중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채택된 글입니다. https://omn.kr/27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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