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때 남편이 한국에 들어와서 같이 보냈으니 이번 재회는 6개월 만이다. 겨울 눈 날씨를 피해서 오다보니 이렇게 텀이 길어졌다. 작년에 왔을 때보다 집이 좀 더 어질러져 있었고, 외로움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냉동실에 그득 채워두었던 국과 볶음밥 두어 개가 가을바람에 낙엽 뒹굴 듯 처량하게 굴러다녔다. 먹다먹다 질려버린 주인장의 눈 밖에 나서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되었나보다.
짠한 마음에 2주 계획하고 온 일을 후회했다. 좀 더 길게 머물 것을 계획하고 왔더라면 혼자 있는 외로움을 달래주고, 따신 밥이라도 몇 끼 더 챙겨줄 수 있을텐데라는 회한이 밀려왔다. ‘뭐시 중헌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생이별을 하면서 살아야하나 싶다가도 회의는 물에 던진 돌 가라앉듯 금방 사라진다. 어쩔 수 없는 거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이 월급쟁이 신세지라며 혼자서 손바닥 뒤집듯 빠른 태세전환도 일삼는다.
"그럭저럭 반이 지났잖아, 조금만 더 참자"라는 남편의 말이 자신을 위로하는 말 같아 더 짠하다. 달력에 하루하루 빨간 줄을 긋듯 날을 꼽고 사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저려온다. 주위에서는 다들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며 남편과 떨어져 사는 나를 부러워한다. 결혼생활의 거의 반을 따로 살면서 아이들 키우는 일이며, 이사하는 일 등 크고 작은 일들을 전부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아이들도 다 컸고, 일도 쉬고 있어 내 인생 최고의 여유로운 날들이지만 부단히도 동동거린 지난날이었다. 그나마 해외근무 년 수가 정해져 있기에 또 우리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아쉽게도 떨어져 사는 우리부부의 측은지심은 약발이 채 일주일도 못 갔다. 첫눈에 빠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3초,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더니, 떨어져 사는 부부의 애틋함은 유효기간 7일이라는 나만의 공식을 오늘 하나 더 추가해 본다.
어쩌면 우리 사이가 좋은 건 떨어져 사는 시간 덕분인 것 같다. 서로에게 해 주지 못하는 부분을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기에 애틋한 마음이 크다. 줄곧 떨어져 지내다 만난 지 일주일쯤 되면 이제 슬슬 본색이 드러난다. 각자의 생활에 루틴이 깨지면서 불만이 생기고 차츰 잔소리가 개입된다. 좋아 죽을 만큼 경계를 허물다 그만 안전수칙을 잊고 말았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친다.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충돌사고가 생기는 것과 같다. 적당한 거리두기는 전염병을 겪으면서 체득된 물리적 안전예방 수칙중 하나이지 않았던가. 확장해 보면 정신적, 정서적 거리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현재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집이 또 있다. 큰형부가 퇴직을 하고부터 언니 네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어떤 날은 몇일 동안 냉담기간이라 하고, 어떤 날은 상담을 간다하고, 또 어떤 날은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한다. 아참! 하나 덧붙이자면 퇴직한 부부의 삶이 안정을 되찾는데 필요한 시간이 3년이라는 말도 항간에 나돌고 있다. 형부는 서산의 한 화학공장에서 근무를 하다 퇴직 후 경남진주에 새 터전을 잡았다. 생활환경과 이웃이 모조리 바뀌었고 형부의 삶의 형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대지각 변동을 맞았다. 언니는 형부가 퇴직을 하고나면 둘만의 시간들로 알콩달콩 지낼 줄 알았다. 형부의 지각변동은 짜증, 화, 침묵, 서운함으로 표출되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언니에게 이제는 돈을 안 벌어오니 자신을 무시한다는 오해의 발언을 하는가 하면 걸핏하면 혼자 삐진다는 것이다.
언니 네가 당면한 문제는 많은 퇴직한 부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을 문제라고 지칭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애주기에 나타나는 공통된 과정일 것 같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달리 없었다.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이했는데 적응에 필요한 시간이 평균 3년이라니, 이제 언니는 일 년을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사춘기시기를 뇌회로의 재조립과정에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십몇 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가지를 뻗은 신경회로들을 모조리 꺼집어 내어 재배치하는 과정이라는 뜻에서이다. 회로들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동안 온갖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난무하는 건 당연하다. 퇴직 후의 삶도 사춘기만큼은 아니어도 이에 버금가는 큰 변화일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부부의 안전거리 확보가 언니네 경우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중요한 건 물리적, 정신적 거리두기는 어느 부부에게나 필요한 과정이다. 부지런한 형부가 할 일이 없어지자, 언니가 운영하는 목공소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처음에는 언니의 육체적 노동을 덜어주는 형부가 한없이 고마웠겠지만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았을까.
혼자 두고 떠나는 날, 여성호르몬이 풍부해진 남편은 서둘러 나를 출국심사장으로 들여보내고 혼자 눈물을 훔칠 것이다.(나의 착각일수도...) 주어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지내다가 다시 만나는 날, 잠시 좋아죽다가 안전거리 확보가 시급하다고 느끼다가 또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다 더 늙어지면 가까이서 서로의 등 긁어주며 안전거리 따윈 염려 않고 같이 늙어가기를 바란다.
(남편!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잘 있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