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하늘빛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엄밀하게 따지면 하늘빛이 아니라 대기 중 공기의 질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넓은 땅덩어리가 부러웠는데, 이번에는 청명한 하늘색이 너무나 부러웠다. 지리적 위치 때문이라 하기에는 두 곳이 같은 행성에 있는 것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다른 빛깔이었다.
부러운 감정은 그들의 쓰레기 처리 행태를 보니 곧 억울함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특이점은 그곳에서는 분리배출을 하지 않는다. 쓰레기라는 쓰레기는 모조리 하나의 쓰레기통으로 직통한다. 씽크대의 개수대 아래에는 분쇄기가 달렸다. 음식물쓰레기는 물과 함께 개수대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분쇄기 버튼만 누르면 음식물 처리는 끝이다. 수박껍질처럼 분쇄하기에 많은 양이라면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려도 무방하다.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하는 한국 사람들의 노고가 무색하다. 워싱턴 주의 모제스 레이크라는 작은 도시의 이야기라 미국 전역의 실태라고 일반화 하기는 힘들지만 현실정은 그랬다. 개수대 아래로 쓸려간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 없이 배출된 쓰레기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것은 한국에서 온 이 아줌마의 걱정일 뿐이다. 쓰레기마저 수출하는, 대국이라 자칭하는 그들의 민낯은 어찌해도 바뀌지 않을 안일함을 넘어 오만함으로 다가왔다.
기후변화의 조짐을 느끼는 요즘 누구라도 환경을 위한 고민은 한번쯤 해 보았을 것이다. 차이라면 생각과 실천사이의 틈이 개인마다 다를 뿐이다. 내 경우에는 대충 이러하다. 박스에 붙은 테이프와 택배송장을 분리하려 안간힘을 쓴다. 투명플라스틱 병에 붙은 얇은 라벨을 제거하기 위해 손톱 끝 날을 세워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다 쓴 삼푸 통을 버리기 위해 몇 번을 헹구고 그마저도 그냥 흘려보내기가 죄책감 들어 속옷 빨래용으로 사용하려 애쓴다. 계란껍질과 과일 씨를 분리 배출하고, 감자탕을 먹은 뒤 남은 뼈는 따로 비닐봉지에 꽁꽁 묶어 일반쓰레기로 배출한다. 가급적 택배주문을 자제한다. 이런 수고로움 따위 일체 필요 없는 미국에서 나는 쓰레기 마구마구 버리는 호사를 약간의 죄책감과 맞바꾸었다.
급진적 환경운동단체들은 개인들이 실천하는 환경보호 행위들은 매우 미미하다고 한다. 고작해봐야 분리배출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다. 탈원전, 탈석탄, 산림훼손금지에 의한 환경보호들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는 행동들이다. 때로는 나의 이런 사소한 행위가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나의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에만 그치는 나의 환경운동 실천은 얄팍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나 한사람부터라는 소명의식을 키워왔다. 나 하나쯤이라는 무책임한 말 대신 나부터라는 인식은 비록 시작이 미약할지언정 끝은 창대하리라 믿어왔다. 나도 하고 너도 하면 결국 모두가 하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내 주위엔 특별하게 환경 보호를 위해 실천하는 한 사람이 있다. 자신이 탄 비행기가 한 번 이륙할 때 배출하는 탄소량이 일년 동안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때의 양과 맞먹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비행기 타기를 의도적으로 꺼린다. 3년간의 농촌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의 구석구석에는 환경을 위한 실천들을 엿볼 수 있다. 얼마 전 가족여행으로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탄데 대해 적잖은 마음의 짐을 가지기도 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런저런 실천들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불현 듯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고는 환경을 위한 실천을 저축에 비유해 보았다. 돈을 모으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전략을 얘기할 때 우리는 선저축 후소비를 말한다. 먼저 일정금액의 돈을 저축한 다음 남은 돈으로 소비를 하는 형태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소비를 먼저 다 한 후에 남은 돈을 저축하려 한다면 아마 저축할 수 있는 돈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환경을 위한 실천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편리함을 추구하고 그런 후 환경을 위해 실천하려 든다면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내 생활이 약간은 불편해 지더라도 이것만큼은 지키자라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두어야 한다. 그 원칙들을 지키는 동안 약간의 손해와 노고를 감수하기만 한다면 곧바로 환경을 위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몇 가지 상황에서 선환경보호 후편리를 실천해 가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지속가능한 형태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환경을 위하는 행위들을 할 때 유혹이 따르거나, 얼마만큼 노력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