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외모에 대한 이야기로 친근감을 표현하는 버릇이다. 주의하고 또 주의하지만 반가움이 극에 달했을 때는 내 속에 깊게 박혀 있던 뿌리 하나가 예고도 없이 불거진다.
지난주 도서관 활동가 선생님이 지인을 초대했다. 그는 책 출간과 독서세미나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어 우리 도서관에서도 함께 할 일이 있나 하고 방문했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어머!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일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담하고 여리여리하게 생기셨네요.”
억! 최악이다. 사실 이렇게 글로 표현하고 보니 이건 무시무시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게 생각했다는 말에 문제없이 받아들였다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때마침 그쪽이 나쁜 컨디션을 가졌더라면 “대체 나를 어떻게 이야기했던 거야?”며 괜한 사람에게 덤터기 씌울 수도 있는 일이다. 짧은 시간 상대의 뇌리를 마구 헤집어 놓을만한 처사이다. 아담하다는 말을 왜곡해서 들으면 이것이야말로 외모를 평가절하하는 발언의 표본이다. 키에 대해 한 맺힌 사람들에게는 아담하다는 표현은 곧 작다는 것과 동격의 의미로 들릴 것이다. 여리여리하게 생겼다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여성은 ‘여리다’라는 말을 좋아할 것이라는 성적 차별의식이 내포된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저 친근하고 반갑게 맞이할 명분을 내세워 내식대로 내 맘대로 상대의 외모를 평가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굳이 급하게 친근함을 표현해야 하고 굳이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일이다. 아마 ‘나는 착한 사람,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빠른 시간에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반성해 봄 직하다. 이런 생각을 깊게 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내게 고통을 준 사람에 의해서다.
그 고통은 약 일 년 동안 지속되었다. 최근 그가 다른 지방에 머무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모임에 뜸하게 되어 한결 나아지긴 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모든 사람에게 한없이 친절하다. 늘 먹거리와 선물들을 그득그득 챙겨 온다. 자신의 과거를 솔직함으로 포장하여 과감하게 드러낸다. 나올 때마다 다음 모임에 나오지 않을 거라 미끼를 던진다. 모임 후에는 언제나 내게 전화를 걸어 멤버들의 험담을 널어놓는다. 그 험담의 주된 화제는 각자가 써온 글에 대한 합평이 있고 난 뒤 그 사람들의 가식덩어리에 질색하겠다는 내용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언제나 몇 번을 꼬아 듣는 습성이 있는 듯했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가장 험담을 많이 한 사람에게 가장 친절한 말과 애정 어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러한 특징은 본인도 인정했다. 알지만 자신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었다.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이다. 이와 같은 그의 본색을 알 리 없으니 모두가 그를 반기고 그의 유쾌함에 즐거워한다. 매번 글쓰기 힘들어서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오라고 달래며 그의 미끼를 아무런 의심 없이 덥석 받아 문다.
그가 하는 과잉 친절은 누군가의 험담을 한 죗값으로 치르는 자신만의 고해성사 방식인 듯했다. 나의 고질병인 외모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그것과 의도는 다르지만, 사람을 대할 때의 표현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과한 것보다는 차라리 모자란 것이 낫다. 친절과 뒷담화 사이의 엄청난 갭을 보여준 그에게서 나는 뜻밖의 교훈을 얻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 것이며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도 있는 과한 인사말은 하지 않기로 하자. 나의 감정만이 전부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상대의 감정도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