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소나무의 훈장
'아낌없이 베풀어 준 그'를 생각하며 나는 한달음에 동산에 올랐다. 35년 만에 마주할 그를 생각하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가 어디쯤에 서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나고말고. 친히 맷등을 지키는 보초병을 자처하고서는 주인도 모르는 커다란 무덤가에서 그는 언제나 늠름한 장군이었다. 그를 마주하면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재 어서요 어서~ 빨리 타고 싶어요"
"알았다 알았어. 고녀석들 그동안 어찌 참았나 몰러~ 허허~"
뒷동산에 오르자 여남은 살 꼬마 아이들이 그네를 매다는 아저씨 옆에 서서 재촉하며 조잘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귓전에 맴돌았다. 그네의 귀환에 깡마르고 낯익은 한 소녀의 모습도 아른거렸다.
내 어릴 적 동네 뒷동산에 유난히도 팔뚝이 굵은 키 큰 소나무 한 그루. 명절 때가 되면 마을 이장님은 아이 주먹으로는 쥐어지지도 않는 굵고, 기다란 줄의 그네를 그 큰 소나무에 매달아 주었다. 골목에서 하는 딱지치기, 술래잡기, 사방치기, 말뚝박기, 구슬치기도 재미있었지만 그네가 돌아온 순간부터 골목놀이는 한동안 식은 보리밥 신세가 되고 만다.
소나무는 푸르고 잎이 무성했다. 튼튼한 가지와 널찍한 밑싣개를 연결해 주는 굵직한 밧줄은 세 갈래의 삼다발로 촘촘하게 닳아져 있었다. 그네 타기는 방법면에 있어 매우 다기했다.
‘혼자 앉아타기’, ‘둘이 서서타기’, ‘둘이 앉고서서타기’, ‘둘이 서서타기’ 등 그네에도 시대상이 반영된 탓인지 지금에야 혼자 타는 그네뿐이라지만 그 시절 그네는 주로 이인승 그네타기가 유행이었다. ‘앉고서서타기’는 한 친구가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앉으면 반대방향에서 다른 친구가 양 다리를 벌리고 서서 그네를 굴린다. 이 방법은 서 있는 친구가 앉아 있는 친구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므로 동생이나 체구가 작은 친구를 태워주는 일종의 재능기부식 그네타기였다. 선 친구는 무릎을 접는 동작과 동시에 양 손으로 그네 줄을 벌리면서 힘차게 굴렸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반대로 그네 줄을 오므려야 한다. 그네가 빨리 올라가기 위해서는 구르는 다리동작과 손동작의 협업이 중요하다.
‘둘이 서서타기’는 두 친구가 마주보고 서서 발은 지그재그로 밑싣개 위에 올리고 떡방아 찧듯 움직여야 한다. 먼저 정면을 보고 선 친구가 다리를 굴리면 되돌아 올 때는 반대편 친구가 굴려야 한다. 둘이 하는 만큼 그네는 금방 높아져 하늘의 구름까지도 닿을 듯하다. 최고높이까지 올라간 그네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팽팽했던 줄이 잠시 느슨해지는 찰나를 거쳐야 다시 내려올 수 있는데 그 순간에는 간이 선들 할 만큼 짜릿하다. 한 번은 그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그만 손에서 그네 줄을 놓치고 말았다. 숨이 멎는다는 표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네 아래 널브러져 한참동안 숨을 고르며 있을 때에도 소나무는 말없이 애처롭게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숙아~ 저녁 먹으러 퍼뜩 오이라” 동산 아래 보이는 우리 집 앞마당에서 젊은 내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화들짝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소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 해 준 소나무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농사를 지으며 홀시어머니와 다섯 자식을 건사하는 일은 불감당이라 우리가족은 곧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렇게 이별을 한 소나무는 이제 꿈속에서만 볼 수 있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소꿉놀이, 전쟁놀이, 숨바꼭질, 아카시아 파마를 하던 동산 한쪽 끝에는 가파른 절벽이 있었는데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종종 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클라꼬 그런기다”하시며 동산에 대한 나의 동경을 성장통의 위로로 보듬어 주셨다.
결혼 후에 두 아이를 얻고 키우면서 나는 뒷동산의 소나무를 생각하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수도 없이 읽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내게도 아낌없이 내어 주던 소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이 든든하면서도 무척 그리웠다. 객지를 떠돌아다니는 삶은 고향을 찾을만한 짬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만난 소나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왜 이제야 왔냐’는 꾸지람도 없이 그저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무성했던 잎사귀는 듬성듬성해졌고 풍성했던 가지들은 앙상하게 변해 있었다. 마침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제일 큰 나뭇가지에 나란하게 두 줄로 패인 상흔, 필경 그네 자국이었다. 그네와 합심하여 우리를 하늘 끝까지라도 데려다 주고 싶었던 그의 노고가 훈장처럼 빛나고 있었다.
초라한 어깨위에 자랑스런 훈장을 단 퇴역장군의 모습이 이처럼 늠름할까라는 생각을 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주름지고 거칠어진 그의 몸둥아리에 얼굴을 살포시 대고 속삭였다. 수고했노라고 그리고 고마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