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힘
최준영의 인문 에세이 <결핍의 힘>의 한 대목을 읽고 산책 내내 '결핍'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다. 지금 내가 느끼고 누리는 행복들이 다분히 어릴 때의 나의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그랬다. 나의 경제적 궁핍은 웬만해선 근검절약해야 하고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고 싶다는 욕심이 들지 않는 쪽으로 뻗어갔다. 그래서인지 조금 불편해도 또는 갖추지 않아도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결핍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 때야 대부분이 가난했고 결핍이 생활화 되어있었지만 요즘 아이들이야 사실 물질적으로 결핍을 거의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결핍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래서 사 줄 수 있는 것에도 애써 한 두번 더 고민하는 척 했고, 원하는 결과물을 쥐어 줄때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친구가 가졌다고 해서 꼭 나도 가져야 한다는 당연성을 갖지 않길 바랐다. 어린 아이들로서는 납득이 안 갔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 방법이 맞는 것인지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도 잘 먹어본 놈이 잘 먹고, 돈도 잘 써 본 놈이 더 잘 번다는 그럴듯한 말에 흔들리기도 했다. 유행을 쫓아가며 이것저것 소비를 경험해야 여러 분야에서 해박하고 자기 가치를 높이는 건 아닌지, 최신 기기들을 사서 다뤄봐야 IT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건 아닌지, 핫한 것들을 선점해야 친구들로부터 인싸가 되는건 아닌지 등등
아이들이 클수록 이런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제 아이들이 부모를 평가할 정도로 많이 컸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가끔 아이들 눈에 비친 나의 객관화 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못 들은척 은근슬쩍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마음먹고 반응을 할 때면 한마디 건네 본다. "그래서 엄마 사는 방식이 싫어?"
"아니,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게 가정교육이죠." 난 또 그 한마디에 헤벌쭉 한다.
책 <결핍의 힘>에서는 이러한 경제적 결핍에만 포커스를 맞춘건 아니다.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돈에 대한 집착이 그 외의 삶의 가치를 압도하는 데서 오는 정서적 결핍 역시 심각한 결핍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 재산의 상속 권한도 없이 자라났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결핍은 되레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 역시 서자라는 결핍을 극복한 사람이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또한 그런 경우였다. 인간의 역사는 저마다의 결핍을 극복해온 과정이다. 결국 삶이란 끝없이 자기 안의 결핍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결핍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결핍을 채울 것인가 아니면 열등의식으로 남길 것인가의 선택지가 있다면 누구나 채울 것이다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그러나 그 채우는 과정이 쉽지 않기에 아무나 다빈치, 이덕무, 잡스처럼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풍족함 속에서보다 결핍 속에서 삶의 동력은 더 강력하게 작동하리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