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것들
내 귀하신 친구들이 친히 내가 있는 동네로 한 잔 하러 온다는데 내 어찌 아무데서나 맞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 밤 걷기 운동으로 횟집 답사를 나섰다. 가을 기운을 품은 회의 맛을 몸이 먼저 반응하는지 친구들도 회가 먹고 싶단다.
시대에 역행하는 짓을 한다고 나무랄지도 모르겠지만 손바닥 위 지도가, 반짝이는 내 두 눈과 명석한 판단력을 능가하진 못할 것이다. 사진이라는 것이 신출귀몰해서 실물을 늘어뜨리고 확대해서 막상 가보면 그 집이 이집이 맞을까라는 의심을 들게 하고, 올라온 음식들의 평들 또한 오촌의 당숙까지 동원된 느낌이라 온전히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걸 안다.
작년 겨울에 만난 이후 이 얼마만의 기꺼움이란 말인가.
내가 여수에 살면서 회를 대하는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진 관계로 여간에서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횟집은 자고로 싱싱해야 하고, 청결해야 하고 게다가 친구들과의 만남인데 분위기도 좋아야 하고, 고려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만나기로 한 장소의 인근 횟집을 폰으로 검색을 한 후 올려둔 내용들도 간단히 참조하고서는 직접 횟집 앞을 서성이며 살피는 것으로 답사를 했다.
첫 번째, '만원수산종합시장'은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다. 회에 대한 예의가 있지 어찌 만원으로 회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만원이라는게 미끼라는 건 알지만, 저희들도 미끼 끼워 활어 잡아오지 않았으면서 어찌 손님을 만원으로 낚으려 한단 말인가. 그런데 분위기는 널찍하니 꼭 치킨집 처럼 칸막이가 되어 있는 것이 딱 맘에 들긴 했다. 아무렴 분위기보다는 회가 우선이라 이 집은 나의 선택기준에서 탈락시켰다.
두 번째, '미성회센타'는 건물바깥 미장이 새하얗고 구조가 특이해 꼭 지중해 언덕배기 집을 연상케 하는 예쁜 집이었다. 리뉴얼했다며 가게 앞에 개업식 화분들이 즐비했다. 일단 깔끔해서 좋았지만 글쎄 막 개업한 집은 썩 끌리지가 않았다. 새아파트도 환경호르몬이 많듯이 새가게도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완전 역세권의 뜨네기 손님들을 상대하는 집이라 얼마나 음식에 진심일까라는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 번째, '태평양회센터' 커다란 간판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가게 천장을 짖누른 탓인지 천장이 낮아 아늑해 보일 수 있을 법도 한데, 세월의 무딤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파란바탕에 궁서체의 흰 글씨, '회'자만 빨강으로 쓰여진 간판이 너무 진부했고 탁자들도 남루해 보였다. 담배연기 푹푹 뿜어대며 모진 서울생활을 토로하기에 딱 맞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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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부산횟집' 부산이라는 이름에 지연의 연(緣)을 늘어뜨려 일단은 좋은 평점으로 팔이 굽어졌다. 철대문을 들어서니 2층으로 된 가정집이 나타났다. 1층은 횟집으로 개조해서 쓰고 2층은 살림집으로 쓰는 것 같았다. 대문에는 주방장의 사진과 경력이 붙어있었다. 15년 동안 한자리에서 성실하게 회를 썰었다는 친절한 멘트가 정성스럽게 보였다. 의외로 이런 집이 대세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뚝심으로 정직하게 장사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갔지만 글쎄, 안의 분위기는 들여다볼 수가 없어 속단하기가 애매했다.
다섯째, '다래횟집' 네 군데를 들르고 확 끌리는 집이 없어 고민하며 돌아오려다 우회해서 한 집을 더 가봤는데, 그곳은 테이블이 4,5개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자그마한 가게였다. 주인이 주방장인 일인 가게 같이 보였다. 주방장의 포스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sns사진을 믿을 것도 못되지만 음식들에서도 그의 정성이 보이는 듯 했다. 전어회, 전어구이라는 손글씨로 된 손바닥만한 메모가 내 관심을 끌어당겼다. 단지 가게가 좁다는 것에 망설여지긴 해도 좁다는 건 정감이 될 수 도 있는 거니까. 일단 후보에 올려본다.
사람에게도 완벽함이 없듯 가게들도 그러했다. 모든 조건을 만족할 만한 가게를 찾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답사 후기를 글로 써서 보여주었다. 친구 왈 ‘숙아, 우리가 잘못 했다 ’고 했다. 크크크... 이렇게 어질어질하게 장황하게 써서 보냈으니 그런 반응이 되돌아올 수밖에. 사실 내가 의도한 일이기도 하다.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글이 될 수 있기에 적고 나서 보니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하게 정해서 간 식당인데 맛이 별로라면 그것만큼 부담되는 일이 또 있으랴. 매도 혼자 맞는 것보다 다 같이 맞는 것이 덜 아픈 법. 친구들에게 어느 식당으로 갈지 투표하라 했더니 내 의도는 무시한 채
“회에 정말로 진심인 너에게 식당 선택권을 줄게~”
흐아악......못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