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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Mar 25. 2023

K문화 뒤에 내몰리는 인권

김구 선생의 기념관을 관람 후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는 '문화'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절절히 겪으면서도 김구 선생이 간절히 희망한 나라는 부(富)하고 강(强)한 나라보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였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김구선생의 기념관 첫 전시관 입구에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글귀이다.


김구선생의 염원대로 우리나라는 지금 전 세계에 K열풍을 몰고 다니며 한국의 문화를 전파중이다. 내가 미국의 어느 한 마트에서 10대들과 마주쳤을 때 나에게 긴 눈길을 주던 소녀에게 물었다. 혹시 한국을 아냐는 질문에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내 젓더니 BTS라는 단어에는 화색을 띄며 반응을 했다. 아들의 학교 동아리 친구 한 명은 칠레인인데 어릴 때부터 K팝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한국까지 유학을 오는 방법으로 자신의 평생 염원을 실천중이라 했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구나 생각했다.


문화라 하면 “ ‘자연 그대로의 상태’와 반대 의미로, 노력을 통해 경작된 인간의 정신으로서의 ‘교양’이라는 의미로 일컬었다.(문화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

물론 김구 선생님이 말한 ‘문화’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며 따르는 가치, 관습, 신념 등 광의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겠지만 어쨌건 세계 곳곳에서 우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글을 배우기를 자청하며 유학을 오고 싶어 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김구선생님이 말한 문화의 여러 상징적 실천들이 거대한 문화를 형성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이 문화 형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두운 일면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 칼럼에서(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방탄소년단의 알엠이 스페인 언론 기자의 질문에 답한 말이 추앙을 받고 있다며 이에 대한 반론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젊음과 완벽성, 과도한 훈련에 대한 숭배”에 관한 질문에 “당신들은 영국, 프랑스처럼 과거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성공했지만, 우린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어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해서 겨우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물론 그림자는 있지만 빠르고 격렬하게 일어난 모든 일엔 부작용이 있는 법이죠.”라며 알엠이 답했다』(칼럼 내용 중)


여기서 말한 그림자란, 낙오자들을 일컫는다. 고시준비를 하던 실패자,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 후 성공으로 가지 못한 탈락자, 사회분위기가 만들어 놓은 성공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소외자들

우리는 일등에게만 주목한다. 점수를 매겨 숫자에 집착해온 민족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젠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친구들 몇몇이 모여 여러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빠지지 않고 하는 말들이 있다. 공부 못한 아무개, 코흘리개 아무개, 말썽꾸러기 아무개, 자퇴한 아무개는 선생님들로부터 갖은 인신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들 자기 밥그릇 차고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누구는 집도 짓고 건물도 사고 동창회에 나오면 의기양양 하고. 누구는 농사를 열심히 지어 지역 유지가 되어 있고. 자신만의 능력을 꾸준히 키워 고향에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며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평가했던 대로라면 절반 이상은 사람구실 못하고 논팽이가 되어야 마땅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자랄 때 숫자로 매겨진 등수는 그저 그때만 통하는 수치에 불과했다.


잘 산다는 것은 돈이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안다. 일등이라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뒤에 숨어있는 가치 있는 행동들에 주목해야 한다.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문화의 강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라가 부강해서 다른 나라를 해하는 것조차 싫다고 하신분이다. 경쟁의 장에서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낙오자가 되고 목숨을 끊는 일들에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해도 문제없는 것인가. 어느 곳이든 이겨내는 강한 사람이 있으니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너 스스로 강인해져야지라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태도가 옳은 지는 잘 생각해 볼 일이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당장의 현실에서 무시되는 인권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언론에서까지 우리의 과도한 일등열광주의에 대한 앞날을 걱정한다. 정작 우리는 짧은 시간에 경제 강국을 일궈내면서 수없이 많은 그림자에 익숙해져 버렸다. 수많은 이들이 불행의 늪으로 빠지고 소수의 살아남은 자들이 아무리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국위선양을 한다고 한들 그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문화강국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김구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문화강국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보다 더 넓고 길게 퍼지기 위해서는 소수의 살아남는 자들에 의해서가 아닌 다수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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