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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Apr 15. 2023

공원 집사한테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어르신

매일 밤 공원 몇 바퀴를 도는 것은 나의 편안한 밤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루틴중의 하나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다는 칸트와는 다르게 어느 때고 유연하게 밤마실을 나간다. 공원에는 나무들이 많다. 김구선생 외 독립운동 의사들의 묘가 있고 독립 운동가들의 위패와 원효대사 동상이 있다. 공원의 밤은 어둡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로등이 과하지 않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식물들에게 밤은 어두워야 마땅한데 사람들 보호한답시고 환하게 밝혀둔 불빛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원은 작은 동산을 자연그대로 유지하면서 가꾸어져 경사가 있고 굴곡이 심하다. 제일 높은 곳 평지에는 어린이놀이터와 농구장이 설치되어 있어 늦은 밤에도 남학생들의 농구는 끊이지 않는다. 그 공간의 환한 불빛과 붐비는 인기척 덕분에 겁 없이 공원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공원을 돌때면 자주 보는 광경이 하나 있다. 캄캄한 밤이 되면 체구가 자그마한 한 어르신이 백팩을 메고 나타나신다. 유난히 어두운 장소 한 곳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가서 쪼그리고 앉으신다. 부시럭부시럭 한참 동안 무슨 일을 꾸미신다. 그러는 사이 고양이 서너마리가 모여든다. 어르신을 처음 보게 된 때는 지난 여름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훨씬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해 왔는지 모른다. 추운 겨울에는 냥이들이 어떻게 겨울을 날까 걱정이 되면서도 어르신의 행위가 은근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는 일로 불상사가 일어나는 기사를 접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염려해서 인지 어르신의 행동에서 다소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웅크리고 앉아 냥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어르신의 실루엣이 이제 내게 다정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고양이들은 하루 온 종일 순국선열들이 모셔진 공원을 지키는 집사 일을 도맡는다. 무덤까지 파헤치는 두더지들을 겁주고, 공원 곳곳의 화장실 근처에 서식하는 쥐들을 잡는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놀래키는 족제비들을 쫓는 보초역할도 거뜬히 해낸다. 열심히 일하느라 허기 져 있을 그들에게 어르신은 융숭한 저녁 만찬을 대접한다. 어르신이 이 중대한 임무를 의뢰받으신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 추운겨울을 마다않고 냥이들의 저녁 식사를 챙긴다는 일은 보통 정성이 아니다. 더군다나 물가가 올라 냥이들의 먹이를 장만하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해 분당에 살 때는 '고양이 엄마'라는 분을 본 적도 있다. 그 지역에서는 꽤나 알려져 있는 분이었다. 자주 가는 가게에서 고양이 엄마를 만났다. 가게 사장님은 냥이들을 위한 핫팩을 기부하기도 했다. 고양이 엄마는 탄천 일대의 고양이 주 서식지를 알고는 추위가 극심한 날 밤이면 핫팩을 넣어준다고 했다. 강원도 산불이 났을 때는 직접 가서 산불로 인해 오도 가도 못 하는 고양이들을 구출해 오기도 했다고 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실천하는 마음에 감탄을 금할 길 없었다. 

동물의 세계는 적자생존이라며 자연의 법칙대로 흘러가게 두어야지 인간의 손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나 역시 그러한 의견에 찬성하는 쪽이다. 고양이들의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이 골칫거리라 어떤 지역에서는 상당한 불편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먹이를 한 번 주기 시작하면 계속 같은 장소를 배회하고 찾아오는 것이 싫어 고양이 먹이를 챙기는 사람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감을 표출하는 방식은 지극히 잘못되었지만 주민들이 겪는 불편한 점들에 대해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아끼는 사람을 보니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공원에서 고양이의 먹이를 챙기는 어르신, 자연재해로 오도 가도 못하는 고양이들을 구출하고 돌보는 고양이엄마는 내가 목격한 장본인들이다. 

공원의 어르신은 고양이가 인간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해 주기 때문에 먹이를 챙겨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양이 엄마 역시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돈을 들이며 그들을 돌보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생명에 대한 존중, 연민에서 나온 사랑일 것이다.

인간에게 피해를 주면 보호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에서 벗어난 그분들의 순수한 사랑의 발로에 딴지 걸만한 하등의 이유는 없다. 

매일 밤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기는 어르신의 한결같은 실천은 야생동물의 처우문제에 대한 갑론을박을 넘어선 위대한 실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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