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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Apr 21. 2023

집주인에게는 말 못해

화장실 변기 물받이 통 하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진다. 물받이 뚜껑이 통속으로 빠지면서 하부에 충격을 주어 깨진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은 자신이 사고를 쳤다며 미안해했지만 이런 것쯤은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일요일 밤에 벌어진 일리라 당장 수리를 할 수 없다는데 있었다. 변기 뒤 물 주입기 잠금장치는 노후화 되어 헛돌기만 할뿐 제 기능을 상실했다. 밤새 물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집밖에 있는 원천 밸브를 잠그면 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다음 날 일찍 집주인에게 문자를 했다. 주인은 대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당장 달려올 수 가 없다. 하자보수가 필요할 때면 지정된 인테리어사장님을 보내 주신다. 작년에 세면대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랬다. 

업체 사장님이 아침 일찍 오셨다. 변기 상태를 살펴보시더니 뒤 물받이통만 교체하면 된다고 했다. 사장님은 임대인에게 전화를 했다. 변기와 수도밸브가 노후 된 것과 사용자 과실을 참작해서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도록 제안하자 주인도 흔쾌히 허락하였다. 변기 사양이 오래되었지만 같은 모델을 을지로상가에 연락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퀵으로 왔다. 여기까지는 일이 일사천리였다. 일이 너무 쉽게 잘 풀린다 싶을 때 불안은 언제나 안개처럼 낮게 드리워져 온다. 물통만 간단히 갈아 끼우면 되는 작업인데 사장님은 진땀을 빼고 계셨다. 요리조리 맞춰 끼우느라 변기가 부딪히며 나는 음조와 사장님이 토해내는 불만 섞인 변조는 결국 불협화음으로 치달았다. 


모델명은 같으나 서로 호환이 안 되어 좌변기까지 같이 교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또다시 을지로 업체에 좌변기를 퀵으로 주문했다. 금방 해결 될 줄 알았던 변기 교체는 오후 한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열일 제쳐두고 시급한 우리 집 변기를 위해 애써 주신 사장님께 엎드려 절을 하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그러나 사장님이 떠난 현장은 허술한 지점들로 가득했다. 벽에 바짝 달라붙어야 할 물받이 통이 앞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벽과의 틈만큼 불안정감도 컸다. 지면과 변기의 접착을 위해 석고로 시멘팅 한 부분은 보기 흉할 만큼 넓었다. 그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물때가 끼거나 변색이 될 부분이다. 안착이 될 정도로만 최대한 얇게 해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가장 큰 문제는 외관이 아니라 기능상의 문제에 있다. 지난 번 변기는 물내림이 아주 매끄럽고 수압도 만족스러웠었다. 하지만 시공 후의 변기는 변기레버를 길게 눌러야 했다. 길게 눌러도 변기통은 물을 삼키고 싶지 않다는 듯 거북스런 소리를 낸다. 

사장님은 지난 번 세면대 배수관을 교체할 때도 그랬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원천적 문제는 미제로 남겨두었다. 게다가 배수관을 가려주는 세면대 아래 받침대와 세면대 아귀가 맞지 않은 채로 설비를 마쳤다. 석연치 않은 마무리였다. 끄덕대는 세면대가 떨어질까 불안해하며 한참을 사용하다가 결국 내가 손을 보고 난 후 지금은 흔들림 없이 사용 중이다.   


사장님 명함을 보니 인테리어 대표라고 되어있었다. 솜씨를 보니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지 전문 수리기사는 아닌 것 같았다. 운영상 어려움 때문에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까지 했다. 사장님은 경험부족이라기 보다 이 쪽 방면에 아예 재주가 없으신 것 같다. 


임대인은 좋은 사람이다. 사장님 역시 좋은 분이신 것 같다. 사장님이 과한 수리비를 요구했거나 정직하지 않았더라면 임대인은 그 사장님을 믿고 맡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장님의 기술(솜씨)이다. 집주인은 자신이 직접 살아보지 않는 이상 수리가 잘 되었는지 디테일한 것같이 알 길이 없다. 차후 베란다 천장에 물이 새는 것도 수리를 해야 한다. 내가 사는 동안 참고 살아보겠다고는 했지만 이대로라면 집주인은 또다시 그 사장님에게 의뢰를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일에서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기술이 요하는 일에서는 사람 좋음 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전문성이다. 누구라도 솜씨 없는 기술자에게는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을 테니까.


주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해 주어야 하나 여러 번 고민했다. 내가 주인 편에 서서 사장님의 솜씨를 고자질 해버린다면 사장님은 고객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입 꾹 닫고 있으면 사장님은 고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집주인은 여러 가지 성가신 일들을 겪어야 한다. 

왜 이렇게 이런 것들에 신경이 쓰일까. 나는 내가 임대인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란 걸 잘 안다. 굳이 내 입으로 이실직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임대인에게 죄책감을 가질 만한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발설 할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사장님이 고객을 잃게 되면서 내가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격이 된다. 나는 그저 안물안궁으로 일관해야 할 건가 보다. 


집주인이 내 글을 볼 확률은 내가 집주인에게 고자질할 확률만큼 낮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고마운 집주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하다. 미약한 확률일지언정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며 이 글에 거짓 없는 사실을 적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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